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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여인숙

[도서] 제비꽃 여인숙

이정록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이정록의 시는 사물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있다.그는 요즘 유행하는 다른 시인들이 보여주는 사물에 대한 피상성과 추상적인 어투를 피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어투로 우리가 보지 못하는 이면을 보게 만든다. 거기에서 이정록시인의 시가 힘을 얻는게 아닐까? 어물전이며 싸전, 골목골목 좌판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 십중팔구 여자다. 여자라고 부르기에도 뭐한 여자다. 서로 여자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심심찮게 이 여편네 저 여펜네 악다구니를 끼얹는, 세 바퀴 반을 돌린 돌린 털목도리들이다. 생선 비늘 덕지덕지한 스폰지 파카들이다. 좌판이 키워왔는지 궁둥이를 중심으로 온몸이 뭉쳐져 있다 저 자리들을 모두 수컷으로 바꿔놓고 싶다. 마늘전 김봉길 씨와 옹기전 심정구 씨만 빼고, 썬그라스와 방수 시계를 파는 서부사나이만 놔두고, 종일 내기 윷 노는 담뱃진들과 주정이 천직인 저 가래덩이들을 검정 비닐봉지에 한 열흘 집어넣었다가 좌판에 꿇어앉히고 싶다. 나오자마자, 파주옥이나 당진집으로 달려갈 저 수컷들을 한장 토막이라도 돼지쓸개처럼 묶어 말리고 싶다. 선거 철에만 막걸리 거품처럼 부풀어 오르는 저 수컷도 아닌 수컷들을 외양간 천장이나 헛간 추녀에 매달아 놓고 싶다. 궁둥이들의 가슴을 보아라. 밥이란 밥 다 퍼주고, 이제 구멍이 나서 불길까지 솟구치는 솥 단지가 있다. (이 땅의 여인들에게선 불내가 난다. 수컷들에게서도 설익은 불내가 나지만, 그것은 너무 오래 쓰다듬어주기만 한 여인들에게서 옮겨 간 것이다.) 깔고 앉았던 박스를 접고 천원짜리 몇을 다든고 있는 갈퀴 손으로 저 잡것들의 버르장머리부터 쳐라. 그리하여 다리몽둥이 절룩거리는 파장이 되게 하라. 돌아가 저녁상을 차리고, 밤새 또 술 주정을 받아내야 하는 솥단지들이여. 삼밭 장작불처럼, 이 수컷을 매우 쳐라. 저 수컷을 매우 쳐라 이 시에서 이정록은 자신의 관찰력과 사건들의 의미를 잘 조합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들로 구어체적인 문장 전개를 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건과 사물들이 우리 눈에 보여지듯이 기술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의미의 흐름을 잘 유도하고 있다. 이 시가 이정록의 시 셰계를 대변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만의 독특한 시 셰계가 잘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마지막의 '저 수컷을 매우 치라'는 화자의 집적적인 언질이 없었다면 더욱 힘이 실리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점이다. 너무 화자가 드러나 이야기 한다는 것이 아쉽다. 전체적으로 이 시집은 윗 시에서 보았듯이 힘이 있다. 그리고 깔끔한 맛이 난다. 그리고 아름답다. 시가 힘을 가지게 될때, 즉 시가 호소력을 가질때 그 시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발산하게 된다. 갓 중학교에 들어간 단발머리 소녀처럼 깔끔한 그의 시에서는 이리와 같은 속내가 있고 그러나 얼굴은 싱글싱글 웃고있다. 이것이 바로 이정록의 시이다.

[인상깊은구절]
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마다 별이 뜬다 한번에 깨지는 알 껍질이 있겠는가 밤하늘엔 나를 꺼내려는 어미의 빗나간 부리질이 있다 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 젖은 내 눈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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