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장래 희망...나 자신의 1987년 12살이었던 나에게 다가가 본다. 무언가 꿈이 있었던가. 내가 어떤 아이이고, 어떤 것을 잘하는 사람인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너는 어떤 아이이고 무엇을 잘하는 아이라고 칭찬을 해주었던 어른이 있었던가.
숙제를 잘하고, 발표를 잘하고 공부를 잘하면 좋은 아이라고 칭찬받던 시절, 나는 조용한 성격에 그림을 꽤 잘 그리고 친구들의 말을 잘 듣는 스타일의 아이었다. 따뜻한 하늘을 그리고 싶은 아이었고, 목소리가 크지 않고 말 수가 적었어도 친구들이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아이었다. 하지만 본래 그러한 본성을 나는 끝내 외면으로 드러내거나 부각시켜보지 못한 채, 사람들이 “이 쪽이 그대가 갈 곳이다” 라고 한 길을 따라 내가 좋아했던 미술보다는 국영수 학업에 열중하고, 조용한 성격은 온데간데 없이 지금은 외향적이고 말을 굉장히 많이 해야 하는 직업생활을 하고 있다. 친구들의 말을 잘 듣고 양 쪽을 잘 중재할 줄 알았던 나는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지시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박성우가 지은 ‘열 두 살 장래희망’은 나로 하여금 수십년 일찍 태어난 것을 후회하게 만든 책이다. 대다수 아이들의 꿈이 과학자, 선생님, 의사, 법관, 대통령 같은 몇 가지로 나뉘었던 시절이 지나고 ‘너는 어떤 특성을 가진 아이이고 무엇을 잘 하기 때문에 미래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런 직업을 가지는 게 좋겠구나’ 라는 말 대신 ‘좋은 대학가려면 공부해라’ 라는 짧고 날카로운 말만 들으며 꿈많을 학창시절을 보내고 말았다. ‘꿈많던 학창시절’이 아니라.
장래 희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 책을 1987년에 읽어볼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지만, 결코 지나간 세월을 되돌릴 순 없다. 대신 나에게는 12살인 딸과, 내년에 12살이 될 아들이 있고, 내가 지도하는 수십명의 아이들이 있다. ‘열두 살 장래희망’을 읽고 12살이었던 나 대신에 딸과, 아들을 비롯한 많은 아이들에게 진짜 ‘꿈과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나의 한 평생은 이전의 후회를 덮어버리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