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남 선생님.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책을 좋아는 해서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라는 책 표지를 보긴 했는데 스무살, 서른살, 마흔살 나이를 구분 짓는 책들 유행일 때도 왜 굳이 구분 짓나 이해할 수 없어 읽지는 않았었다. <죽은 아버지>를 읽고 힘들었던 터라 쉽고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택하고 싶었고, e북토커 선발 대회라는 것도 있어 10만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이라고 하기에 한 번 읽어보았다. 처음 읽을 때는 그냥 편하게 읽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비판적으로 읽었고, 세 번째 읽을 때는 친구와 수다 떠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사연이 있고 고통이 있고 현실이 있고 삶의 패턴이 있다. 나 또한 그러하였고 보이지 않는 문제로 많이 힘들었었다. 보이는 문제는 오히려 치료하기도 가늠하기도 쉬운데 마음의 문제나 보이지 않는 문제는 이게 문제인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얼마나 깊이 박혀있는지 알 수가 없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람도 있고 안다고 하더라도 고치기도 힘들다. 알지 못해서 힘들고 알아도 치료할 수 없어서 힘들다. 그래서 옛날부터 병은 처음에 잡아야 한다고 했던 것일까?
나의 문제를 파악하는 데 일단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내 문제 알았고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 또한 많은 시간과 에너지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옷 단추를 끼고 있는데 중간쯤 끼었을 때쯤 첫 단추를 잘못 끼었다는 것을 눈치챘다고 하자. 아예 모르고 계속 끝까지 끼웠다고 하면 아차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어 아무 문제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중간쯤 알아 버렸고 다시 처음부터 풀어서 다시 묵느냐, 알면서 계속 가느냐, 중간부터 정상적으로 낄 것이냐 등등의 선택에 직면했다. 나는 처음으로 되돌리고 다시 묵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 남들 자동차 탈 때 나는 다시 걸음마를 배우는 것을 택한 것이다. 얼마나 바보 같은가. 남들에게 추천할 만한 방법이 아니었지만 난 그 선택이 좋았다.
연금술이라고 해야 하나, 등가교환이라고 해야 하나, 기회비용인가 난 그 말을 좋아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뿌린 대로 거둔다. 선택에 따른 책임쯤 되려나? 콩 심었는데 콩이 나긴 나는데 꼭 뿌린 대로 나는 것은 아니고, 잘날 때도 못날 때도 있지만 꼭 콩이 나온다. 콩을 뿌리고 팥을 바라지 않으며, 수확을 못 하는 날이 있더라도 난 콩을 얻기 위해 콩을 뿌린다. 당연하다 생각하는 이 이야기가 그렇게 만만하고 쉬운 것이 아니다. 나 또한 마음의 병이 있을 때 그랬고, 내 주변에 수두룩하게 많이 있고 보았다. 컨디션 안 좋을 때 나 또한 팥을 다시 바라려는 마음이 생기려고 함을 느낀다. 그럴 때 마음속으로 되새긴다. 욕심부리지 마. 내 것이 아니야.
어릴 때는 아빠 엄마는 슈퍼맨, 원더우먼이었고, 가족들은 정의의 사도, 친척들은 도움을 주는 영웅들이었다. 머리가 굵어져서 환상 속에서 벗어나 현실을 바라보니 모두가 악당이며 빌런이었다. 아차차 나를 빼먹었네, 나는 악마의 자식이었다. 패관 수련한 후 다시 주변을 바라보니 이번에는 주변 사람들이 다 상처 입은 히어로 보이는 것이었다. 영웅이 되었다가 악당이 되었다가 가여운 사람이 되었네, 원효대사의 해골 물이 따로 없었다. 결국 문제는 나였다.
나의 문제는 엄마에게 비롯되었고, 엄마의 문제는 외할머니에게 비롯되었다. 외할머니의 문제는 한국의 시대상 그리고 부모의 부재, 양형제의 재산 가로채기, 싫은 사람과의 결혼, 외할아버지의 병, 첫째 아들의 죽음 등등 있었다. 어느 순간 알았다. 알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피해자고 나에게 가해를 입힌 엄마도 피해자라는 것을. 엄마 대신 주변에 멘토가 될 만한 사람이 있나 찾아 다녔다. 사람마다 장점도 있었고 단점도 있었다. 여러 사람을 만났다. 해서 마지막 결론이 나왔는데 내가 제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우리 엄마가 가장 난사람이었다. 난 얼마나 바보였던 건가. 금은보화가 내 옆에 있었는데 알아보지도 못한 것이다. 역시 결론은 내가 문제였다.
우리 엄마도 당연히 장점 단점이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 중에 가장 좋은 사람이다. 그런 엄마도 나이가 듦에 따라서 몸도 마음도 쪼그라들고 자꾸 추해지려고 하기에 옆에서 도자기 다루듯 매 만져 더러워지지 않게 하고 있다. 나이가 듦이 슬픈 일이지만 곱게 나이 듦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난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속으로 되새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작가님을 만나면서 우리 엄마가 작가님처럼 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멘토이기도 하고 내 인생의 친구이기도 하고 내 부모이기도 하기에. 잠자는 엄마를 보면 아프지 말고 건강하셨으면 생각하는데, 김혜남 작가님 또한 많이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고,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친구 한 명은 얻은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나와 딱 맞지는 않지만 대부분 비슷했고 특히 삶을 바라보는 낙천적인 성격이 너무 좋았다. 우리 엄마뿐만 아니라 나도 김혜남 작가님처럼 지혜롭게 늙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