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복수라는 소재를 많이 다룬다. 복수를 통해서 대리만족하며 현실과 다른 모습에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마농의 샘 2> 역시 마농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예상했던 대로 그렇게 속 시워하지 않다. 복수의 대상이 하나 혹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복수하는 과정에서 나의 마음도 나빠지고 그들과 같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니체의 심연에 대한 명언이 생각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위골랭이 꼽추 장의 샘을 막았듯이 마농은 마을의 샘을 막는다. 파페나 위골랭의 농장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물도 막아 마을 전체의 존망을 위협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죄가 있고 그 죄에 대한 댓가일 것이다. 통쾌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뒤끝이 깨끗하지 않다. 죄인들에게 피해를 보고 복수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살하지 말고, 죽을 거면 같이 죽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왜 혼자 생을 마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복수라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래서 다들 포기하고 피해를 보고도 회피하는구나.
보자 보자 하니까 보자기로 보고 가만히 가만히 있으니까 가만니로 본다는 말이 있듯이 어렵겠지만, 괴물이 되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당장 눈앞의 일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행동이 다음 세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내가 한 선택에 대한 댓가가 참혹하더라도 내 선에서 끝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행동하여 분명한 흔적을 남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끔 독립운동가들을 보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이 폭탄이나 총으로 암살하면서 죄 없는 사람들, 일반인들에게 피해를 줘 괴로워하면서도 담담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이유가 자신의 이득이나 일반적인 복수가 아니라 거대하고 창대했던 의로움이 있었다는 것을요. 마농의 행동이 복수에 그치지 않고 프로방스 사람들, 프랑스 사회, 더 멀리 인류의 정의에 대한 행동이었으면 합니다.
자기 잘못은 언젠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듯이, 의로운 행동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의로 돌아가는 복수가 참다운 복수가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마농의 샘 1>, <마농의 샘 2>를 읽은 후 사색의 시간이 많이 필요했고, 영화 원작이라고 해서 2편의 영화 또한 보았습니다. 책도 좋았고 영화 또한 좋았습니다. 고전의 장점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농의 샘> 책도 영화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