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텐츠 바로가기
- 본문 바로가기
기본 카테고리
농무에 나타난 처절한 현실인식
작은사자
2002.04.26
댓글 수
0
이 시집을 읽고 있으면 정희성의 저문강에 삽을씻고 라는 시집이 생각난다. 정희성이 민중의 아픔을 노래했다면 신경림은 농민의 아픔을 노래해서 일까. 왠지 두시집는 공통점이 참 많은 것 같다. 신경림은 농민속에서 현실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은근히 제시함으로서 조용히 비판하고 있다. 지금은 농민이 이것 때문에 힘들다. 정부는 뭐하나. 농민좀 수쉬게 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그냥 농민들의 삶 자체를 보여주고만 있을 뿐이다.
이제 시골 큰집이 싫어졌다는 아이가 있다.
'장에간 큰아버지 좀체로 돌아오지 않고/ 감도 다 떨어진 감나무에는 / 어둡도록 가마귀가 날아와 운다/ <중략> / 남의 땅이 돼버린 논뚝을 바라보며 짓무른 눈으로 한숨을 내쉬는 그/ 인자하던 할머니도 싫고/ 이제 나는 시골 큰집이 싫어졌다 '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보기에도 자신의 시골이 이제 예전과 다름을 안 것이다. 훈훈한 정을 찾아볼 수 없는 시골집. 을씨년스럽기까지한 그 집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게 많이 변해버린 것이다.
너무나 힘들지만 대가도 없는 농사를 팽개쳐 버리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전략) 비료값도 안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을 와 돌 때/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한 다리를 불고 날라리를 불거나/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농민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농사를 '따위'라 표현하며 가축을 죽이는 도수장을 돌 때 신명이나 춤을 춘단다. 정말 신명이 나서일까. 그것은 몸부림 일 것이다. 가축의 삶이나 다름없게 보이는 자신들의 삶에 대한 몸부림.
<어느8월> 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 '양조장 옆골목은 두엄 냄새로/ 온통 세상이 썩는것처럼 지겨웠다' 은 나를 놀라게 한다. 농민이라면 항상 구수하게 맡을 두엄냄새가 세상이 썩는것처럼 지겨웠다니. 현실속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이길래 시인은 이런 표현을 서슴없이 내뱉는 것일까.
그러나 이들은 농촌이 힘들다고 결코 서울을 동경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이질감을 느끼며 서울에 대한 저항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겨울밤>의 '서울로 식모살이 간/ 아기를 뱃다더라' 라는 구절이나 <60페이지>의 '서울을 얘기하고 그/ 더러운 허영과 부정/ 결식아동 삼십프로/ 연필도 공책도 없는 이/ 소외된 교실'에서 서울에 대한 좋지않는 인식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시골의 가난은 변하지 않는다. ' 20년이 지나도 고향은/ 달라진 것이 없다 가난 같은/ 연기가 마을을 감고' 이 구절은 왠지 지금의 가난도 달라진게 없지만 앞으로의 가난도 달라질게 없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농무』에 실린 시에는 모두 농민과 민중의 현실적 고통이 가득 담겨있다. 누군가에 감정없이 객관적으로 농민들의 삶에대한 얘기들를 듣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에게 전달되어 가슴으로 들어오는 이야기는 모두 감정이 담겨있다.
[인상깊은구절]
갈길
녹슨 삽과 괭이를 들고 모였다.
달빛이 환한 가마니 창고 뒷수풀
뉘우치고 그리고 다시 맹세하다가
어깨를 끼워보고 비로서 갈 길을 안다.
녹슨 삽과 괭이도 버렸다.
읍내로 가는 자갈 깔린 샛길
빈주먹과 뚜거운 숨결만 가지고 모였다.
아우성과 소래소리만 가지고 모였다.
PYBLOGWE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