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룬다티 로이는 이미 페미니즘과 환경문제 정치문제까지 활동적인 사회운동가로 유명했다. 그는 1997년에 데뷔와 동시에 부커상을 수상했는데 인도 사회의 신분제도와 가부장적인 사회관습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세운다. 크게는 가족이고 작게는 개인이 되는데 자신을 암무에 어느 정도 투영한 자전적인 소설이 될 수 있겠다.
학창시절 사회시간에 인도의 신분제를 배운 적이 있다. 삼각형을 그리고나서 그 속에 가로로 세개의 선을 그어 네 단으로 나눈다. 마치 동물들의 먹이사슬을 배우던 때처럼 맨 상단에는 브라만을 적고 맨 하단에는 수드라를 적는다. 삼각형에도 밑에 공백에는 불가촉천민을 적는다. 여기서 벨로타의 신분은 삼각형에도 오르지 못했다.
독서모임 내에서 유행이되어 이년전 먼저 읽어봤던 책이였다. 당시에도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변화무쌍한 서술과 수 많은 묘사로 화려한 문장 때문에 읽는데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았었는데 재독이라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너무 일찍 재독한 탓일까? 고통받는 여성의 이야기가 어쩌면 우리와 닮아있어서일까? 다만 이 이야기를 받아들임이 전보다 힘들지 않아 다행이였다. 신분과 관습에는 사랑도 해당되지 않는다. 이혼이 근친보다 더 악으로 여겨지고 여성과 아이는 더욱 박해받는다. 이런 상황을 이겨내야만하는 암무와 쌍둥이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 생각에 속이 답답하다.
큰 것들이 만들어내는 폭력에 희생되는 작은 것들이 박쥐가 되고 개미가 되고 거미가 된다. 이제 나는 늙지도 않은 젊지도 않은 나이 서른 하나가 된다. 살아도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그때의 그 나이가 되는 것이다. 전보다 암무와 훨씬 가까워졌다. 서른 하나가 지나고 난 뒤에 이 책을 을 또 읽을 기회가 올까? 안와도 이상할 것 없겠지.
- 이제 부드러운 반달이 눈 아래 자리잡은 그들은 암무가 죽었을 때 만큼이나 나이가 들어 있었다.
서른하나.
늙지도 않은.
젊지도 않은.
하지만 살아도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