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끝난 도쿄 올림픽에서 인상 깊었던 선수가 있었다. 유도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안창림 선수다. 출전한 전 경기가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였다. 아쉽게 결승 진출은 실패했지만, 마지막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연장전까지 경기를 치렀다. 그리고 기사가 쏟아졌다. “재일교포 3세”, “귀화 선수”. 기사를 보고 알았다. ‘아, 안 선수가 재일교포였구나.’
“마사루가 메달을 딴 선수보다 더 월등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마사루는 한국 국적이어서 일본 국가대표가 될 수 없었다.” (p.205, <국가대표> 중)
안창림 선수는 일본에서도 촉망받는 젊은 유도 선수였다고 한다. 이름을 일본식으로 개명하지 않은 채 선수로 활동했다. 한국으로 넘어오기 직전에는 일본으로의 귀화도 권유받았다고 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안창림 선수는 확고했다.
확고한 안 선수의 신념은 올림픽 후 출연한 TV 프로그램에서 한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조센징’, 한국에서는 ‘쪽바리’라 불리기도 했지만 꿈을 위한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모습을 통해 재일교포 사회가 좀 더 용기를 얻고 힘을 얻기 원한다는 말도 했다. 멋있었다.
특히, 몇 해 전 일본 내 재일교포 학생들이 재학 중인 조선학교에 일본의 극우 혐한세력이 시위를 벌인 일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그 학교에 안 선수의 남동생이 있었고, 남동생을 포함한 많은 학생이 공포를 겪고 이후에도 트라우마로 힘들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리고 이것이 일본으로의 귀화를 거절한 큰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이 상태로는 아무리 열심히 펜싱을 해봤자 다케루가 일본 국가대표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올림픽에도 세계선수권 대회에도 영영 나갈 수 없을지 모른다.” (p.206, <국가대표> 중)
안창림 선수도 실력 자체는 뛰어난 데,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갈 수 있는 시합이 많이 없었다고 했다. 일본 선발전에는 나갈 수 없었다. 초대 조선대학교 교장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아무래도 바꿀 수 없다.”라고 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든, 운명적인 선택이었든, 한국에 와서도 “쪽바리”, “일본놈” 같은 비아냥과 조롱을 견디며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비슷한 처지의 경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면 공감하기 어렵다. 나 또한 그렇다. 일본에서는 “조센징”, 한국에서는 “쪽바리”라는 소리를 듣는 일상이 어떨지 가늠하기 어렵다. 공감도, 가늠도 하기 어렵다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공감뿐이다. 그들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 공감하는 것.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책에 등장하는 마사루와 다케루도 절대로 일본 국가대표가 될 수 없는 현실을 알고 있다. 성적을 내고, 올림픽 메달리스트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지만, 한국 국적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재일교포 운동선수들이 모두 안창림 선수처럼 한국으로 귀화해 한국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비슷한 경계선 안에서도 차별과 조롱을 딛고 일어서지 못한 채 주저앉는 경계인들이 더 많을 것이다.
경계인인 재일교포가 일본 사회에서 겪는 일상은 짐작하기 어렵다. 기껏해야 TV에서 소개되는 정도인데, 이 책 「가나에 아줌마」는 그들의 삶과 일상을 다층적으로 소개한다. 마치,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듯했다. 사건이 이어지고 인물들이 등장하며 사건과 인물이 겹치고 섞인다. 책은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시사하는 바는 많다. 재일교포가 겪는 결혼, 차별, 자녀 양육, 직장 문제 등. 경계선 안의 일들을 상공에 떠 있는 드론으로 조망하듯 관찰하는 맛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의 삶도 우리와 매한가지다.’라는 것이었다.
“장 여사한테 이케가미에 사는 가나에 아줌마한테 가면 좋은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다고 들었어요. 전국의 재일교포들이 다 여기로 찾아온다고, 그래서 좋은 인연도 많다고요. 금세 짝을 찾아준다고 했거든요.” (p.20)
결혼 적령기를 놓친 교포 청년들의 중매를 직업적으로 하는 가나에 아줌마는 재일교포 사회에서는 유명인이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회나 성당 같은 곳에도 가나에 아줌마 같은 중매쟁이들이 있다고 한다. 일단 종교가 같으니 다른 소개팅 자리보다 편하게 만날 수 있단다. 실제로 목격하기도 했다. 시내 큰 커피숍에 그날따라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선남선녀들이 많았다. 그리고 여러 테이블 사이를 미끄러지듯 왔다 갔다 하는 노인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이 바로 가나에 아줌마 같은 ‘중매쟁이’였던 것이다. 선남선녀가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기고 커피숍을 나서더니 문 바깥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여성은 갈 길을 가고, 남성은 다시 커피숍으로 들어와 테이블에 앉았다. 남성의 착석과 거의 동시에 미끄러지듯 ‘중매쟁이’ 할머니가 앉아 한참을 얘기했는데, 잠시 뒤 다른 여성이 남성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고 ‘중매쟁이’ 할머니는 면면에 활짝 웃음을 띈 채 총총 자리를 뜨셨다. 몇 년 전이지만 기괴한 장면이라 기억에 남아 있었다. 가나에 아줌마도 그랬다. 내가 봤던 할머니들과 달랐던 점은 훨씬 성공률이 높아 교포 사회에서 인지도가 꽤 높았다는 점이다.
“그 아가씨 고향이 혹시 제주도나 전라도는 아니죠?”
“아냐, 분명히 경상남도라고 했어.”
“휴, 다행이네요.” (p.25)
교포 사회에서, 그것도 교포 1세대 2세대도 아니고 3세대 이후의 결혼 상대자를 찾는 기준이 “전라도”, “제주도”라니. 일부러 소설의 극적인 연출을 위한 과장이라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실제 교포 사회가 더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재일교포, 재미교포를 막론하고 말이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지인이 현지 한인교회를 잠시 다녔었는데 장난이 아니라고 했다. 나쁜 의미로. 한국의 그 어떤 교회들보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는 것이었다. 교회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최초 정착한 1세대의 가치관과 국가관은 수십 년 전의 것이고, 그것이 2세대·3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심지어 ‘그 아가씨’는 제주도나 전라도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아가씨의 부모 혹은 조부모가 태어난 곳이다. 그런데, 경계선 안에서는 더욱더 좁아질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생각도·기준도 말이다. ‘경상남도’라서 다행인 것이 누구에게 다행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아가씨와 총각은 서로 아주 마음에 들고 잘 맞아서 결혼하고 싶은데, 한쪽 부모나 조부모의 고향이 제주나 전라도라면 당장 파투 낼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겠지. 누구나 불편해하지만, 누구도 쉽게 바꿀 수 없는 불문율 정도다. 그리고 가나에 아줌마에게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될 것이고.
경계인들이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기준에 집착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재일교포 가족들이 사는 가정을 벗어나면 바로 맞닥뜨리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타인일 뿐이다. 오랜 시간 차별받고 조롱당하며 그것을 숙명처럼 등에 지고 살았다. 그런 이들에게 출신과 성분, 지역은 고국과의 연결고리다. ‘나도 모국의 사람들처럼 이런 것을 따진다.’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할배가 온 후로는 매 끼니 식탁에 김치가 오르게 되었다. 재일교포 2세인 부모님이 매끼 김치를 먹어 온 것은 아니었고, 3세인 미오와 고타의 경우에는 김치를 전혀 먹지 않았다. 냄새조차 싫어했다.” (p.292)
“불공평해요. 취직할 때도 제약이 많았어요. 사실은 정부 계열 금융기관에 취직하고 싶었는데 저한테는 시험 볼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어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단지 한국인으로 태어났을 뿐, 저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잖아요.” (p.42)
교포 2세대는 김치를 흔하게 먹지 않았고, 3세는 전혀 먹지 않았다. 냄새조차 싫어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타인이고 경계인이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 단지, 운동선수만 차별받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한국인으로 태어났을 뿐인데, 취직이 안 되고 시험조차 볼 수 없다. “저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잖아요.” 맞다. 아무 잘못도 없다. 하지만 현실이다.
경계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현실.
이것은 하루 이틀, 일·이년 동안 축적된 것이 아니다. 교포 역사를 거슬러 올라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꾸준히, 쉴 새 없이 축적된 것이다. 당연히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 보루로 쌓아 올린 자신들만의 성을 경계선 바깥의 사람이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집은 너희 집이랑은 다르잖니? 그 뭐야, 우리는 양반이란다.” (p.160)
양반? “우리가 양반”이면 “, ”너희는 상놈”이라는 말인가? 구한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성을 쌓아도 너무 높게 쌓았다. 민단과 조총련의 갈등보다 더 심할 것 같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탐탁지 않다. 처음부터 ”‘너’는 ‘나(우리)’와 달라.”라고 못 받는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음식을 장만하고 준비하고 진행되는 과정 내내 구박에 구박을 더한다. 모국에서도 씁쓸한 관용구가 되어 버린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면서. 며느리는 잘하고 싶다. 눈에 띄게 자신을 싫어하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헛수고다. 시어머니는 박은 못을 쉽게 빼내지 않으려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손윗동서와는 대놓고 기 싸움을 한다. 예비 며느리 에리카는 당황에 당황을 더한다.
”네가 일본 사람이란 거 아무렇지도 않아. 이건 내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 문제지. 에리카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일본 사람은 우리 집 며느리가 될 수 없어. 우리 집은 양반이라 어쩔 수 없어. 결혼 문제로 앞으로 널 힘들게 할지 몰라.“ (p.169)
일본 사람이라서 그렇다. 교포 선남선녀가 만나는 데는 출신과 고향이 중요한 기준이 되기는 하지만, 일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만 40년을 살아온 내가 1도 예상할 수 없었던 부분이다. 힘든 제사가 지나가고 에리카는 혼란스러웠지만 예비 신랑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다. 가나에 아줌마가 소개한 한복집에 시어머니와 함께 한복을 맞추러 간다.
그리고 충격적인 고백을 듣는다.
”나도 일본 사람이었어.“
”내가 일본 사람이었던 건 아들들도 영인이도 몰라. 결혼하고 한국 국적으로 바꿨으니까. 부모님은 나랑 인연을 끊으셨어. 친구들도 다 떨어져 나갔지. 나는 말야, 이 집으로 시집와서, 그래…. 말도 못 하게 시집살이를 했다. 재일교포 1세인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으니까. 양반이라기에 그런가 보다 했단다. “(p.195)
일본 사람이다. 가 아니라 ‘일본 사람이었다.’ 과거형이다. 결혼하고 귀화한 것이다. 국적을 바꾸고 경계선 안으로 들어 온 것이다. 40년 동안이나 참기름을 온몸으로 뒤집어쓰며 도미코는 도쿠지의 아내이자, 김씨 집안의 며느리, 그리고 한국인이 된 것이다. 시어머니는 완전히 한국 양반의 후손 며느리가 된 것이다. 자식들조차 모르게 했다는 삶은 얼마나 고단했을 것인가. 재일교포 어느 집안, 한국의 어느 양반집 며느리보다 더 참기름을 뒤집어서 쓰고 정성스레 제사를 준비했을 것이다. 법적으로도 완전히 한국 사람이 되었지만, 시집살이 중 서럽고 힘든 일은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을 것이다. 자신과 같은 어려운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를 예비 며느리를 보며 40년 전,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분노와 후회를 쏟아냈을 수도 있다. 그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길인지 알고 있으니까. 자신의 힘든 걸음을 되풀이 할 ‘일본 사람’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가나에 아줌마와 재일교포 사회의 결혼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중첩과 복선이 이 책을 읽는 재미다. 재일교포 작가만이 담아낼 수 있는 재일교포 사회의 단면과 이면의 모습도 재미있고 의미 있었다.
우리와 같은 듯, 다른 경계인의 삶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이 더 많아진다. 어쩔 수 없는 경계의 삶에서, 같은 것보다 다른 것으로 인해 차별과 혐오가 지속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