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보다 말이 더 어려운 사람이다.
최근 직장에서 나의 절친이 나의 상사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절친이지만 상사이니까 예의를 지켜 대한다.
그 친구는 말을 참 잘한다. 물론 글도 잘 쓰긴 하지만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 흘려 보낸다.
더 어르신들이 보기엔 어린 과장이지만 그네들보다 더 말을 많이 하기도 하고
그네들을 확 끌어당긴다.
그게 부럽다. 그 실력으로 과장 승진을 한 것 같아서...
말을 잘 하다 보니 대인관계도 좋다. 누구에게나 언니오빠 아부지 회장님이라는 호칭이 착착 붙는다. 며칠을 그렇게 지냈는데...과연 그 방법이 나에게도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기술이 넘어 예술이 된 아부를 잘 하는 우리 이과장
그에 비해 난 내성적인 성격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바뀌긴 했지만 원래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 억지로 하는 인간관계는 진정성이 없고 가볍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 친구 과장을 보면서 그녀의 대인관계는 진정성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살짝 든다. 나는 그냥 나대로 나 방식대로 나의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련다.
회의 개선하는 법 여러 가지 중 ‘전원이 발언했는가“라는 항목이 있었다. 우리네 직장에서 이것이 참 개선이 안된다. 회의라면서 대부분 부서장만 이야기하니까...
내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좋은 모습만 보여 줄 필요도 없다. 위악적 표현도 쓰고 부끄러운 일도 쓴다. 거침없으니 쉽게 쓸 수 있다. 모든 독자기 만족하지 않아도 된다. 내 글을 좋아할 단 한 사람을 생각하며 쓰자. 너무나 완벽한 인간은 밥맛없다. 완벽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무너지는게 당연하다. 나는 인간적일 때 가장 매력적이다. 무너지고 상처받고 다시 일어서며 쓸 것이다. 생채기에 딱지를 덕지덕지 붙여가며 하루하루 쓸 것이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
‘내가 가장 듣기 싫은 위로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아‘ ’너만 힘든거 아니야‘
쓰기 위해 읽는 것과 읽기 위해 읽는 것은 매우 다르다
쓰기 위해 읽는다. 나도 그렇게 책을 읽고 글 연습을 한지 18년이 다 되어가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은 배가 아니다. 배는 바다로 나가야 한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파도가 치고 풍랑이 일 때 배는 전진한다. 경험은 글쓰기의 좋은 소재이다.
기억은 합리화되고 미화되기도 한다. 뇌는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내게 유리하게 각색한다. 근심과 걱정이 있을때도 글을 쓴다. 그렇다고 각오와 다짐을 쓰지 않는다. 목표를 세우지도 않는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생각나는 기쁨이다. 글을 쓰지 않을 때도 뇌가 글을 쓴다. 길을 가다가, 잠들다가, 책을 읽다 그렇게 써둔 글이 많을수록 생각이 더 자주 나고 그때마다 행복하다.
배려하는 사람의 글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글을 표현력과 진정성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표현력과 진정성이 부딪힌다. 잘 꾸미는 표현력과 꾸밈이 없는 진정성은 상충한다. 흔히 기교보다는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때 기교에 해당하는 게 표현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