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그냥 이렇게 물으면 막연할 것 같아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해를 구했다. 왜 이런 질문이 나왔을까를 알고 나면 이야기가 더 궁금해질 거라 기대하며.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궁금하긴 한데 별로, 라는 허무한 답변. 괜찮은 책이 있다고 알리면 읽고 싶다는 반응를 기대하는데 내 마음 같지 않은 상황을 자주 경험한다. 내가 생각하는 세계와 다른 이들의 세계는 달라도 너무 다르고 그들의 생각을 내 생각에 맞추는 일은 불가능함을 다시 깨닫는 기회가 된다.
이 책 <행성어 서점>을 읽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넌지시 던진 미끼가 통하지 않았던 것. 미끼라고 해봐야 책을 읽게 하겠다는 건데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부하면 조금 허탈해진다. 미끼처럼 던진 말,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는 이 책 '선인장 끌어안기' 편에 나오는 말로, 이 책을 미리보기만 보고 사게 된 결정적인 문장이다. 이런 주제를 다룬 이야기가 있을 거란 기대가 이 책을 구입하게 했다. 내가 그랬듯이 다른 이도 그럴 거라 기대했던 건데, 순전히 내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평생을 살아도 우리는 타인의 현실의 결에 완전히 접속하지 못할 거야. 모든 사람이 각자의 현실의 결을 갖고 있지. 만약 그렇게, 우리가 가진 현실의 결이 모두 다르다면, 왜 그중 어떤 현실의 결만이 우세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까? (57쪽)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라 해도, 깊이 사랑하는 관계라 해도 서로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다. 각자 다른 몸을 살면서 다른 것을 감각하며 살아온 사람이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건, 내 생각에 동의를 구하려는 건 불가능한 일을 해보겠다는 시도가 아닐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란 말은 사회성을 키워온 사람들의 입바른 말이 아닐런지. 그래서 좋은 관계는 상대의 생각과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말 성숙한 사람일텐데, 그게 쉽지 않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람조차 완전히 멈추었고, 정적 사이에 사각사각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는 소리만이 끼어들었다. 리키는 가만히 그 소리를 들으며 포착할 수 없는 순간을, 언젠가는 결국 사라지고 말 순간을 지켜 보았다. (106쪽)
삶에 의미를 담기 위해 순간을 살라고 자주 나를 다그친다. 순간을 살아낸다는 건 순간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살겠다는 의미다. 그게 가능하려면 매순간 내가 감각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게 어떻게 내게 받아들여지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감각만으로 세상을 경험할 수밖에 운명이라면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당장 내가 느끼는 것보다 과거에 박제된 느낌, 미래의 막연한 생각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허비할 때가 많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 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 최대한 주의집중할 때, 내가 가진 지식과 지혜가 빛을 서서히 찾는다. 삶을 예민하게 더듬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래야 새로이 접하는 누군가의 생각과 경험에도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다. 편견을 벗어나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소설 읽기는 나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다. 낯선 세계일 수밖에 없음에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이유는, 그 세계에서 내가 가진 편견을 벗고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낯선 이야기가 친근하게 바뀔 때 더 깊이 새롭게 각인되는 것들이 있다.
개별적 개체성, 그게 인간일 때의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었어. 동시에 나를 살아가게 했지. 개별적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전체의 일부라는 건 모순이 아니야. 아니면, 전체라는 건 애초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 (118-119쪽)
읽고 생각하는 세상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싫어하는 줄 알면서 주위 동료들에게 가끔 미끼를 던진다. 누구나 우선하는 일이 다를테니 강요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루 일과 중 독서가 아무런 비중도 차지 하지 않는 건 조금 안타깝다.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들인데도, 각자 자기 인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인데도 약간의 영향을 주고 싶은 욕심이다. 읽고 싶은 책, 좋아하는 책이 있다고 하면 무척 반갑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가 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욕심인 줄 알면서 미끼 던지기는 계속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