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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도서]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3점

백수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일을 해 돈을 버는 것이 인간으로서 우선시 해야 하는 절대적인 목표인 듯한 세상에서 백수로 산다는 건 생각만큼 여유롭고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백수라는 상태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위로한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은 소외이며, 소비의 노예가 되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시간과 관계를 잃는 짓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이 책의 백수의 정의는 좀 모호한 면이 있는데, 정규직이 아닌 시간 여유가 있는 일을 하는 이들까지도 백수라고 칭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백수는 여러모로 자기 발전, 특히 정신적인 발전을 꾀하며 배움에 도전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닌 이들이다.

그래서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연암 박지원의 일화들을 틈틈이 소개한다.

 

 

산다는 건 생각과 말과 발의 삼중주다. 생각의 흐름, 말의 길, 발의 동선, 이 세 가지가 오늘 나의 삶을 결정짓는다. 외부의 힘을 받아서 내적으로 변용시키는 것이 핵심인데,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다음이 말이다. 언어도 숨 쉬고 배설하는 것 못지않은 생명 활동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말의 행로, 생각의 전제가 바뀌기 어렵다. 생각과 말이 제자리를 맴돌면 동선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혼공은 혼밥만큼이나 위험하다. 정말 박학다식한데, 그럼에도 도무지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되는 지식인이 적지 않다. 지식이 자기 안에서 맴돌다 고인 탓이다. 그러니 대학생이 혼밥에 혼공을 한다면, 그 지식은 그야말로 '늪'이 될 확률이 높다.(p. 99)

 

 

연암은 백수로 지내며 자식들에게 손수 볶음고추장을 만들어 보내고, 친구들과는 풍류와 우정을 즐기다가 나이들어 생계를 위해 관직을 하면서는 고을 백성들을 돌보는 사람이었다. 뛰어난 문장력으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으나, 자기 삶에서 더 중요한 것들을 버리고 금전이나 권세에 영혼을 팔 수는 없었던 것이다.

 

생활은 어려웠지만 그는 주변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고 백성들에게는 존경을 받았으며, 책을 읽고 시를 짓고 노랫가락을 읊었다.

속세에 살지만 속세의 때에 절지 않은 채 우정을 나누며 배움을 지속하며 실천하는 삶이라니 과연 본받고 싶은 인물이다.

그러나 한편 드는 생각은, 그가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내의 뒷바라지와 생계 유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리라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조선시대의 숱한 보수적인 남자들과는 달리 깨어 있는 인물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조선 남자였고, 그를 롤모델로 삼고자 한다면 그의 뒤 그늘에 가려진 그 아내의 헌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암은 평생을 독서인으로 지냈다. 근데 읽는 속도는 신통치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기억력이 썩 좋지 못하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덮으면 곧바로 잊어버려 머릿속이 멍한 게 한 글자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니 진도가 안 나간다고, 금방 까먹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독서는 그 자체로 삶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지 기억을 하느냐 못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건 독서가 일상과 오버랩되는 것, 그리고 고전의 내용들이 신체와 융합하여 나의 언어가 되는 일이다. 그게 바로 지성이다.(p. 233)

 

 

저자는 우리 사회의 숱한 백수들로 하여금 그저 "백수"인 채로 골방에서 핸드폰이나 게임기만 붙들고 있지 말고 두 발로 세상을 돌아보고 책을 통해 머리를 일깨우며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라 말한다. 게임에 열중하며 시간을 보내본 적이 있는 나로선 이래저래 공감이 가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구입하며 기대했던 것보다 연암의 이야기가 적어서 아쉬웠고, 책 자체가 예상했던 내용이 아니라서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행간은 왜 이리 넓은지, 또 저자는 왜 이리 감탄문을 자주 쓰는지 거슬리기도 했다. 저자의 생각에 100퍼센트 공감이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삶의 진로를 정하지 못해 방황하는, '깊이 생각할 줄 알지만'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겐 의외로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열하일기>가 읽고 싶어졌다.

 

 

연암의 모든 문장이 감동이지만, 올해(2018) 초 다시 내 가슴을 벅차게 했던 문장이 하나 있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 청년들과 나누고 싶다.

-"그대는 나날이 나아가십시오. 나 또한 나날이 나아가겠습니다."

(p.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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