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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식물

[도서] 싸우는 식물

이나가키 히데히로 저/김선숙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3점

어린아이들은 달콤한 과일은 좋아하지만, 쓴맛이 나는 피망이나 여주는 대부분 싫어한다. 이것은 생물로서는 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달콤한 과일은 식물이 먹으라고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중략) 먹히고 싶지 않은 식물과 먹고 싶지 않은 어린아이 사이의 이해가 서로 일치하는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어른들은 어떠한가. 식물이 일부러 만들어낸 독성분인 쓴맛을 즐겨 먹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쓴맛이 있는 채소를 남기지 말고 먹으라고 강요한다. 이러한 어른의 취향을 식물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p. 210)?

 

 

 

예전에 읽었던 <매혹하는 식물의 뇌>와 <나무 수업>과는 또 다른, 식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싸우는 식물>.

 

앞의 두 책이 식물들이 주변 식물들이나 동물들과 맺는 관계를 주로 다뤘다면(가물가물하지만),

이 책은 식물들이 세포 단위로 맞서야 하는 세균들 수준부터 이런저런 곤충들과의 관계, 나아가 공룡시대 공룡들과의 관계까지 아우르고 있다.

(공룡으로 대표되는) 생명체들의 진화와 멸종이 어느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식물들을 기반으로 한 생태계의 밑바닥에서도 지속된 변화의 한 흐름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식물들의 치밀하고도 현명한 적응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책에서 읽고 놀라워 한 바가 있다. 그저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병풍 수준으로 여기고 있던 식물들 역시 자기네들만의 세계를 이루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협력하며 살아나간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면서도 꽤나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새삼스레 몇 번이고 다시 감탄해버렸다.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기 중의 질소를 추출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 에너지를 만들어내려고 뿌리혹박테리아는 산소호흡을 한다. 반대로 질소고정에 필요한 효소는 산소가 있으면 활성을 잃어버린다. 즉, 산소는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산소가 있으면 곤란해진다.

그러므로 호흡에 쓰이는 산소를 운반하고, 여분의 산소는 재빨리 제거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콩과 식물은 대량의 산소를 효율적으로 운반하는 레그헤모글로빈이라는 물질을 몸에 지녔다. 우리 인간의 혈액 속에 있는 적혈구에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물질이 있어, 폐에서 체내 세포에 효율적으로 산소를 운반한다. 콩과 식물에 있는 레그헤모글로빈은 인간의 헤모글로빈과 유사한 성질이 있는 물질이다.

놀랍게도 콩과 식물의 신선한 뿌리혹을 잘라보면 피가 번진 것처럼 약간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이것이 콩과 식물의 혈액, 레그헤모글로빈이다.(p. 96)

 

 

식물은 자신을 침범한 세균을 세포 내에 가두고 그 세포를 비롯 주변 세포까지 사멸시켜 세균이 몸 전체로 퍼지지 않게 힘쓴다.

외적으로는 곤충이나 동물의 먹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특유의 독성 물질을 생산해 내뿜는 동시에 가시를 세우고 잎 자체를 뾰족하게 하는 등의 방어수단을 갖췄다.

 

또한 생식을 위해 곤충을 유혹하는 향기를 내뿜어 자신이 꿀을 품고 있다고 알리거나 꿀이 없으면서도 있는 척 향기를 풍겨 곤충을 속이고 꾀어 이용하는 등 각종 지능적인 방법을 개발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식물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독성물질이나, 포식자를 유혹해 이용하기 위해 내뿜는 향기와 꿀이 최종적으로는 인간에 의해 갈취당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식물들 입장으로서도 억울하지 않은 것이, 인간에 의해 더 많이 재배되기 때문에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단으로서 인간을 이용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연은 각 개체의 삶의 질이 어떻게 되든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연이 중요히 여기는 것은 유전자가 꾸준히 이어지고 확대되는 것뿐이므로 식물과 인간의 기묘한 공생도 동물이나 곤충과 갖는 식물의 공생과 별다를 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머오키드라는 난초의 한 종류는 꽃 모양이 말벌의 암컷과 비슷하다. 가짜 암컷에 이끌려 찾아온 수컷 말벌이 짝짓기를 하려고 하면 말벌에게 꽃가루가 붙게 되어 있다. 즉, 해머오키드는 꿀도 꽃가루도 말벌에게 주는 일 없이 성공적으로 꽃가루 운반을 완수하는 셈이다.

한편 곤충도 꽃가루를 운반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 그렇게 진화를 거듭한 것이 나비다. 나비는 긴 다리로 꽃에 앉아 긴 빨대 모양의 주둥이로 꽃꿀을 빨아 먹는다. 그 때문에 꽃가루가 나비 몸에 붙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아름다운 나비를 사랑스럽게 보지만, 식물 처지에서 보면 식물과 곤충의 공생 관계를 배반한 나비는 꿀 도둑이나 다름없다.

물론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계는 무슨 일이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 의리 없는 자연계에서도 곤충을 속여 꽃가루를 운반하게 하는 방법이 주류는 아니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갈 것 같은 자연계에서는 모든 생물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데도 많은 식물과 곤충이 서로 도와 공생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금 속여 단기적으로 이득을 얻기보다 정직하게 서로 돕는 쪽이 양측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결론을 내린 셈이다. (p. 150)

 

 

먹히지 않기를 수동적으로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방어하는 법에 이어 적을 이용하는 법까지 개발해낸 식물들의 끈기와 생명력은 과연 식물이 지구상의 진정한 패자인 이유라 할 만하다. 과연 식물과 곤충, 동물 모두를 손에 틀어쥐고 뜻대로 하려는 인간이 멸망으로 향해 가는 지금의 길에서 벗어나 식물처럼 함께 서는 법을 배울 수 있을지 두렵고도 궁금하다.

 

이 책은 내용이 무척이나 재미있고 흥미롭지만, 고작 한두 페이지마다 소제목이 무수히 붙어 있기 때문에 읽다가 자꾸 맥이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이 점은 읽다가도 아무때나 중단할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빠져들어 읽다보니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 불만스러웠던 점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짧은 것보다는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길이가 가독성에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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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에이스스타

    책 내용이 잘 정리 되어 있네요. 잘 읽고 갑니다.

    2019.03.23 12:26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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