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좋아하는 내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제목의 책이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떠오르는 제목이라 더욱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푸른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표지 느낌마저 비슷해서 눈이 번쩍 뜨였더랬다. 다만 '지구생활'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걸렸다. 난 우주에 대해 알고 싶다고!!! 책 소개를 통해 나는 이 책이 우주비행사가 우주 비행을 통해 깨달은 지구 생활에 대한 조언임을 알았고,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구입했다. 우주(자연의 위대함)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인간의 삶에 대해 겸허한 태도를 택하게 되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으므로 우주비행사의 삶의 자세가 궁금했던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내 생각은 옳았다. 크리스 해드필드는 성실하고 겸허한 태도로 삶을 마주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우주에 나갔다 왔기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처음부터 그런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었고, 우주를 경험하여 그런 태도가 더욱 굳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지구 생활에 대한 조언임을 알고 구입하긴 했으나 그래도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반부까지 읽으면서는 조금 후회했다. 마치 자기게발서 같은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끊임없이 내내 올바른 삶의 태도와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금 지루했다. 하지만 아마도 내가 계속 붙잡고 읽은 것이 아니라 틈틈이 읽어갔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1/3 가량 남은 페이지는 침대에 앉아 3시간 동안 죽 내려 읽어 단숨에 끝내버렸다. 읽으면서 나는 미소지었고, 읽고 나서는 괜히 푸근한 마음이 들었다. 일반인들이 우주비행사에 대해 갖는 여러가지 편견에 대해 저자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우주라는 광대한 자연을 접하던 사람이 지구에 붙박혀 평범한 사람으로 살게 되면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갖는 의문이다. 나 역시 그러했는데, 저자는 우주에 다녀온 삶의 경험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부분이 소중하고 중요함을 알고 있었다. 그런 자세는 그가 우주비행사라는 꿈을 갖기 시작한 아홉 살 이후 계속되었다.
궁극적으로 내가 바라던 경력상의 목표에 이르렀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세상에는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변수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내가 제어할 수 있다. 바로,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의 자세다. 자세를 통해서만 든든함과 안정감을 느끼며,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의식적으로 자세를 살피고 필요하다면 고친다. 자세를 잃는 것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테니까. (p. 62)
우주비행사가 쉬운 직업이 아닐 것임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책을 읽으며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번의 우주비행을 위해 몇 년간 똑같은 훈련을 하고, 하고 또 해야 한다. 사소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일도 절대로 빠뜨리지 않도록 같은 훈련을 몇 번이나 해서 몸에 습득시킨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훈련을 한다면 그 어떤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잦은 안전불감증 사고 같은 따위는 더더욱 그렇다.
저자는 전혀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오직 우주비행사를 향해 조준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뤘는데, 아마 다른 꿈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는 그 꿈을 틀림없이 완벽하게, 표본이 될 만큼 이뤄냈을 것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매진하면서도 그는 가족들을 위한 시간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 아내와 세 아이들을 향한 사랑도 아낌없이 드러낸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우주비행사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꿈을 꾸는 사람에게도 롤모델이 되고도 남을 만큼.
왜냐하면 자신이 '하찮은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이 직업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그리고 아마도 이 직업이 싫어질 것이다). 우주비행사는 아무리 총명하고 용감하더라도 독불장군이어선 안 된다. 우리의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은 전 세계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마련해 준 훈련의 결과이며, 다섯 군데 항공우주국에 근무하는 수많은 기술자들이 보내준 지원의 결과다. 우리의 안전은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숨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가령 소유스를 조립한 러시아의 용접공들과 우주복을 만든 북미의 섬유산업 노동자들 덕분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자리 또한 우주탐험의 중요성을 믿고 기꺼이 세금을 내준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우리는 엄선된 소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표하여 일한다. 따라서 국가원수를 만나든 평범한 사람을 만나든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 솔직히, 그건 우주비행사가 아니더라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 삶엠 누가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사람은 CEO일 수도 있지만 안내 데스크 안내원일 수도 있는 법이다. (p. 221)
사실, 우주에서는 가장 밋밋한 날조차도 꿈만 같은 시간이다. 물론 어떤 면에서 보자면, 그곳의 경험이 초월적이라고 느껴지는 까닭이 원래는 사람이 존재하기 불가능한 곳이기 때문이긴 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지구 밖의 생활은 두 가지 중요한 면에서 결코 딴 세상이 아니다. 경이로움과 즐거움 아니면 짜증과 불만 중에서 어느 쪽이든 선택하기에 달렸다. 일상의 소소한 순간 아니면 거창하고 자극적인 순간 중에 어느 쪽을 가치 있게 여길지도 선택의 문제다. 궁극적으로 진짜 질문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느냐는 것이다. (p. 264)
만약 가장 거창하고 눈부신 순간들만 중요하다고 여기기 시작하면 인생의 대부분이 실패라고 느낀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이 즐겁고, 따라서 내겐 모든 순간이 중요하다. 사소한 순간이든 굵직한 순간이든 신문에 날 일이든 아무도 모를 일이든 다 중요하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거창하고 눈부신 순간들에 현혹되어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순간들이 오면 그때 즐기고 축하하면 그뿐, 다시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p. 320)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며 많은 책을 읽어서일까? 그런 독서를 통해 많은 사색을 거쳐서 일까?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고 애썼지만 그는 그가 우주비행사로 활약한 것이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임을 늘 자각할 정도로 생각이 깊다. 그리고 (편집자에게 어느 정도 도움을 받았겠지만) 부러울 정도로 글도 무척 잘 쓴다. 아마 책을 내기 위해 또 그만큼 노력하고 애썼으리라. 우주비행은 끝이 났지만 모두에게 인정받을 만큼 훌륭한 이런 책도 써냈고, 앞으로 어떤 더 멋진 일을 벌이고 보여줄지 기대되는 인물이다. 자기계발서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만 많은 뻔한 책을 읽느니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