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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언어

[도서]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저/김병화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나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일반적인 역사도 좋지만 특히 사물이나 문화에 얽혀 있는 역사 이야기를 선호한다. 무신경하게 접하고 이용하는 것들에 내가 알지 못했던 무구한 역사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되면 우리 인간의 삶이란 것이 한 개인의 인생으로만 토막나 있는 것이 아님을 자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시간의 흐름뿐 아니라 온 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우리와 동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지역의 산물이 그 자체로나 언어로 곁에 있음을 알면 마치 하나의 마법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쨌든 이래저래 얽히고 설킨 것이 좋다는 이유로 역사 이야기를 참 좋아하는데, 이 책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음식에 대한 이야기라서 호기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릴 적 읽던 동화책에 온갖 맛있는 음식의 이름이 나오면, 그 음식이 도무지 뭔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가슴이 설레던지! 음식은 단순히 목숨을 지속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부풀려줄 수 있는 장식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얼마나 즐거울까나.


레스토랑이나 식품업체들의 메뉴판 문구나 포장지 문구에 대해서는 그리 유심히 본 적이 없었다. '맛있는'이라고 적혀 있으면 '얼마나 맛있을까'라고 고민하고 의심해 본 것이 전부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문구들에 가미된 언어가 그 뒤쪽에서 은밀히 호소하고 있는 내용을 보여 주고 있다.

값비싸고 고급스런 레스토랑에서는 재료 생산지에 대해서 기재하는 경우가 많으나, 그보다 저렴한 편인 중저가 레스토랑에서는 '인상주입용' 단어들을 음식 소개 설명에 덧붙인다는 것이다. '짭짤하고 육즙이 풍부하며 맛있는 미트로프…'처럼 하나의 요리에 '짭짤하고', '육즙이 풍부하고' '맛있는' 같은 세 가지 형용사가 붙어 있는 식이다. 이 부분을 읽고 검색해 보니 정말 그런 듯하다. TGI와 아웃백 메뉴를 보니 '매콤한' '전통 뉴욕 스타일' '바삭한' '상큼한' '담백한' '뉴올리언스 스타일' 같은 형용사 등이 붙은 메뉴가 많았다. 저자는 이런 식의 형용사는 '손님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봐' 걱정하기 때문에 변명을 붙인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반해 과자 봉지의 광고문구는 비쌀수록 말이 많다. 천연재료를 쓰고 해로울 것으로 염려되는 물질이 적게, 또는 함유되어 있지 않다고 홍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가 제품보다 더 뛰어남을 인지시키기 위해 비교격을 쓴다고 하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리얼 브라우니' 제품이 떠올랐는데, 이 제품의 이름에 들어간 '리얼'이라는 단어가 바로 그 비교격에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리얼 브라우니이지만, 다른 제품들은 리얼하지 않은 브라우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편 저렴한 제품들 쪽은 전통적인 지역성과 가치 등을 강조해 감정에 호소한다. 글쎄, 우리나라에 저렴한 과자가 있는지 의구심을 감출 수 없긴 하지만 쌀과자 같은 전통과자 느낌(?)의 과자들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엄마' '전통' '우리' '신토불이' 등등. 레스토랑 같은 식당과 달리 과자가 비쌀수록 말이 많은 이유는 아무래도 과자라는 것이 우선 건강에 좋지 못한 식품이라는 이미지를 전제로 깔고 가기 때문인 모양이다.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발견이었다. 앞으로는 식당 메뉴판이나 과자 봉지 하나도 허투루 보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미국의 햄버거, 프렌치프라이, 케첩이-영국의 피시앤드칩스나 일본의 덴푸라, 에스파냐의 에스카베체처럼-원래 미국 음식이 아니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름만 봐도 그것이 다른 곳에서 빌려온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미국의 식문화 또는 요리 이름에 독일어가 크게 기여했다는 점은 햄버거, 프랑크푸르트 소시지, 델리카트슨, 프레츨 같은 단어만 봐도 뻔히 드러나는데, 그에 견주어 프렌치프라이라는 이름에서는 그것이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유래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물론, 케첩은 중국산이다. (p. 101)



저자는 케첩을 포함한 여러 음식을 가리켜 '이름만 봐도 그것이 다른 곳에서 빌려온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엔 그냥 영어 같은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케첩은 중국 푸젠성에서 '생선 젓갈'을 가리키는 데 쓰인 방언이었다고 한다. 이 생선 젓갈이 17세기무렵 이곳저곳으로 전해지면서 재료가 추가되고 빠지기도 하면서 현대에 이르러서는 토마토가 주재료로 굳어진 것이다. 케첩이 중국에서 유래되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처음엔 생선 젓갈이었다니 상당히 놀라웠다. 이 생선 젓갈이 중국에 들른 상인들이나 뱃사람들에 의해 서양에 전해지며 점점 변화, 마지막엔 토마토만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시작된 '저장 생선 젓갈(케첩)'이 바닷길을 통해 전해져 토마토 케첩으로 바뀌어간 경로와 시간을 생각하니 신비롭기만 하다. 또한 칠면조 터키의 이름에 대한 유래도 흥미롭다. 남중부 멕시코에서 서식하던 칠면조가 콜럼버스에 의해 에스파냐로 전해졌다가 포르투갈에 의해 서방에 퍼지게 되었는데, 칠면조의 서식지를 철저히 비밀에 붙이려던 포르투갈은 터키에서 들여온 기니파울이라는 '터키 수탉'과 칠면조가 비슷한 외양으로 혼동이 되어도 이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칠면조는 원래의 이름이 잊히고 대신 터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샌드위치를 먹을 때마다 터키 메뉴를 주문하는 내가 가졌던 궁금증이 이 책에서 풀렸다.


지난 4월 6일 TV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에서 러시아 대표가 코스 요리의 유래가 러시아임을 밝힌 일이 있었다. 프랑스 대표는 아닌 것 같다며 반박했는데,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 다시 찾아보고 반가운 마음에 미소를 지었다. 19세기 이전 유럽에서는 테이블 위에 앙트레를 비롯한 요리를 모두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해당 요리의 순서가 되면 그 요리를 돌려가며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첫 번째 코스가 끝나면 로스트가 중심이 된 두 번째 코스 테이블이 차려진다는 것이다. 19세기가 되어서야 러시아 식의 현대식 코스가 식탁에 등장한다. 음식이 식지 않게 음식을 손님들의 개별 접시에 담아 하나씩 차례로 서빙하는 방식이다. 비정상회담을 보고 다시 책의 이 부분을 언급한 페이지를 찾아보았다. 러시아 대표의 발언이 딱 들어맞아 흥미로웠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은 우리 모두가 이민자라는 사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문화도 고립된 섬이 아니며, 문화와 민족과 종교 사이의 혼란스럽고 골치 아픈 경계에서 어떤 훌륭한 특성이 창조된다. 언젠가는 우리가 싸우는 전투라는 것들이 세비체를 먹으러 어디 갈지 다투는 정도로 사소한 것에 불과해질 날을 고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p. 98)


우리 추수감사절 음식에 담긴 진짜 의미는, 참혹한 노예제의 실상과 이민의 지독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인과 영국인들이 자기들 고향땅의 음식을 가져와서 새로운 나라의 요리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토착 아메리카인과 에스파냐인들이 투쟁과 학살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기들 요리의 여러 요소를 한데 섞어 각자 선조들의 음식문화를 보존하는 데 기여하는 메스티소 몰레 포블라노 데 과홀로테를 창조해낸 것처럼 말이다. (p. 175)



<음식의 언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은 몰랐던 흥미로운 사실을 여럿 알게 되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이런 지식을 얻으면서 나는 저자의 역사와 세계를 바라보는 눈에도 매혹되었다. 세계와 사회, 인간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람임이 엿보여 마음이 푸근했다. 아 참, 제인 오스틴의 가족이 호두로 만든 케첩을 좋아했다거나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레드먼드의 앤>에서 나온 대사 같은 것이 언급된 것이 무척이나 반갑고 즐거웠다. 내 역사책들을 꽂아놓는 책장 칸에 소중히 놓아둘 책 한 권이 생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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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스피린

    항상 보던 음식이나 사물의 역사를 알게 되면 예전의 그것으로 보이지 않지요...ㅎㅎ 유홍준 교수님 말씀이 문득 생각나는..^^ 미시사에 관해 관심이 많고 먹거리에 대해서도 좋아라 하는 저는 얼른 위시에 담을뿐입니다..ㅎㅎ 잘 봤어용^^

    2015.04.13 21:03 댓글쓰기
    • 세쯔

      아스피린 님, 저랑 취향이 비슷하신가봐요^^ 히히~~
      이 책은 음식에 관한 역사를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제목이 <음식의 언어>인 만큼 음식의 이름이나 거기 쓰인 언어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답니다. 그래서 100% 음식의 역사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요. 레스토랑 메뉴에 쓰인 언어나 과자 봉지에 쓰인 언어에 대해서도 몰랐던 걸 알 수 있더군요 +ㅁ+

      2015.04.1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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