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라는 생소한 질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 한 사건 때문이다.
"혹시 ADHD 같은 거 있지 않아?"
살다가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직장에서.
내가 잘못한 어떤 사건으로 인해 듣게 된 말이라 "아뇨."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그 말을 듣고 사무실을 나오면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억울하면서도 수치스럽고 죄송하면서도 화가 나는 말이었다. 그 날부터 ADHD라는 병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로부터 점점 시간이 흘러 몇 달이 지났다. 그런 말을 들었다는 사실이 억울하긴 했지만 어쩌면 나 역시 그 단어를 오해하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보게 되었고 전부터 읽고 싶었던 이 책이 떠올랐다. 책의 서문부터 나의 편견을 때려 부수는 문장이 나왔다.
"책의 마지막은 해피 엔딩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내 질환들을 무작정 사랑하려고도 해 보았다. 하지만 긍정은 흥정의 영역이 아니었다. 책다운 기승전결보다는 내가 여기 있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살아 낸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네모난 책장에서 만난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마모시키며 둥글어진다면 그제야 의문 없이 기쁠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책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가? 답은... 책을 읽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떠한 질병/질환을 앓고 있다는 일에 해피 엔딩이란 것이 있을까 싶다. 수 년간 대학 병원을 드나들며 느낀 점은, 투병이라는 이야기의 해피 엔딩이 꼭 '완쾌'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뇨나 고혈압처럼 평생 관리하며 함께 데리고 살아야 하는 병이 있는가 하면 암처럼 항암치료를 꾸준히 하며 계속해서 관찰해야 하는 병도 있다. 또 자궁내막증처럼 임신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인 병도 있다.
이처럼 ADHD라는 질병도 수많은 병 중 하나일 뿐이다. 그저 병일 뿐이기 때문에 치료를 받고 관리를 하며 나를 돌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해피 엔딩이라는 것은 없다는 게 해피 엔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너 ADHD야?"라는 말을 들었다는 게 모욕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스스로를 의심하거나 주눅들 필요도 없고 오히려 누군가를 판단하는 잣대로 그런 말을 이용한 사람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정지음 작가처럼 해당 질병으로 인해 오랫동안 괴로워 해 본 사람도 아니지만 다른 면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나의 질병이 나라는 사람을 정의할 수 없도록 용기를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