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깽이 챔피언 | 레미 쿠르종 지음 | 권지현 옮김 | 씨드북 | 2016-09

레미 쿠르종의 <말라깽이 챔피언>(씨드북, 2016)에는 두 가지의 특별한 매력이 있다. 가장 큰 매력은 한국 독자들을 위해서 책표지의 “말라깽이 챔피언”이라는 글자를 저자가 직접 써서 완성했다는 점이다. 놀랍다. 작품에 대한 저자의 애틋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또 다른 매력은 책의 본문이 타이포그래피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디테일하고 인상적이다. 이는 집중력과 함께 감탄사를 불러내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원본에 대한 관심을 한층 높여준다.
러시아에서 광부로 일했던 아버지는 아이들과 함께 프랑스로 이민을 간 택시 기사이다. 큰오빠 올레그는 축구에 빠져 있고, 둘째 오빠 보리스는 온종일 먹을 것만 찾는 먹보이고, 막내 오빠 블라드는 자전거를 타거나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빠부터 오빠들까지 남자가 넷, 여자라고는 이 집안의 막내인 파블리나가 유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여움은커녕 설거지와 다림질 등 집안일은 죄다 파블리나의 몫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빠들은 집안일의 당번을 정할 때마다 힘쓰는 내기를 해서 매번 이겼기 때문이다.
이를 억울하게 생각한 파블리나는 피아노 대신 권투를 배우겠다고 선언한다. 자신도 힘을 길러서 오빠들을 이기겠다는 것이다. 곧 소원은 이루어졌다. 권투를 배워서 힘을 기른 파블리나가 드디어 오빠들과의 힘겨루기에서 이기게 되자 집안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편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한 파블리나는 권투시합에 나가게 된다. 시합이 있는 날, 파블리나의 오른쪽 글로브에서는 세 명의 오빠들이 쓴 편지가 나오고, 또 왼쪽 글로브에서는 엄마의 사진 한 장이 나온다. 사진 뒷면엔 “파블리나, 우리 모두 널 응원해! ―아빠가.”(25쪽) 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역시 가족이 최고이다.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파블리나는 시합에서 이긴다. 통쾌한 승리다. 하지만 권투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가족들의 따뜻한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2014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올해의 그림책 수상작품답다. 그림동화임에도 불구하고 플롯과 스토리가 탄탄하다. 마치 잘 짜인 단편소설을 읽고 났을 때의 느낌이다. 간결하지만 분명하고,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아낌없이 전파시킨다. 역시 ‘가족’의 힘은 위대하다. 앞으로는 파블리나가 피아노를 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파블리나의 꿈을 응원하며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