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백마 탄 왕자는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동화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창작된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오랜만에 쓰는 서평이다. 소설의 감정선에 영향을 잘 받는 편이라 우울한 고전 소설을 몇 편 연달아 읽다가 탈이 났다. 굉장히 우울해서 다른 걸로 기분을 회복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도 독서 모임은 외면할 수 없기에 결국 정신 차렸다. 확실히 역사 장르를 보니 감정이 환기되는 느낌이다. 『백마 탄 왕자는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라는 아주 예전에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 나왔던 책인데 이번에 모임 책으로 선정됐다. 제목과 주제가 우리 모임원들을 사로잡았달까.
-핵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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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동화를 작중 설정 배경이나 동화가 쓰였을 당시의 상황 등 역사와 연관지어 이야기하는 인문교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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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명작 동화를 읽으며 들었던 다양한 의문들(조연들의 사연, 사소한 설정, 개연성 없어 보이는 장면, 현대인의 감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등장인물의 행동)을 해소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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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사람들(예를 들어 여성, 아이, 유대인 등)의 관점에서 역사와 동화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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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와 관련된 몰랐던 사실이나 옛사람의 사고방식, 세계사(주로 서양사), 이름만 알고 내용은 몰랐던 동화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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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에 관심이 많거나, 동화를 읽을 때 설정에 불만이 많았던 독자, 동화 자체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추천한다.
-내용-
이번 책은 명작 동화 속 역사 이야기다. 동화를 읽어 보면 문득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왕자는 처음 만난 공주에게 사랑을 느끼고 키스할 수 있지?
백마 탄 왕자가 어떻게 갑자기 숲에서 등장할 수 있지?
마녀가 공주를 도와주면 무슨 이득을 얻는 거지?
거지가 왕자가 됐는데 저렇게 왕궁이 평탄할 수 있나?
아무리 왕비가 마녀라도 엄마가 곁에 더 이상 없는데 저렇게 빨리 다시 행복해질 수 있는 건가?…'
설정이 현실성 없고,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동화 장면들이 많았다. 가끔 왜 명작인지 공감할 수 없는 작품도 있었다. 이 책의 작가도 동화와 관련된 궁금증이 많았다. 크면서 역사를 공부하며 그런 궁금증에 해답을 얻게 됐고, 그를 책으로 썼다.
왜 세계 각국의 설화에서 젊고 예쁜 공주는 착하고, 늙어가는 왕비는 나쁜 마녀로 등장할까. 왜 마녀 왕비들은 마법이란 강력한 도구와 현실의 권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송이 공주들에게 질 수밖에 없을까. 왜 왕들은 모후의 비참한 죽음을 금세 잊고 곧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 걸까.… 공주와 왕비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왕비는 공주의 미래다. 나이 든 공주가 왕비가 되면 또 다른 젊은 공주에게 패배하고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될 운명이라니,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왕비의 가치는 재평가되어야 한다.
p60~61
동화는 27개가 나오는데(메인만 봤을 때), 『백설공주』, 『헨젤과 그레텔』처럼 어렸을 때 흔히 읽는 동화부터 『베니스의 상인』, 『돈키호테』처럼 좀 더 컸을 때 접하는 동화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어렸을 적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플랜더스의 개는 어느 나라 개지?), 좀 더 커서 청소년 시기에 나름 논리를 따져 현실성 없다고 생각했던 동화 속 장면들이 실제 과거를 기반으로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는 동화를 작중 설정 배경이나 동화가 쓰였을 당시 상황과 연관 지어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당시에 소외됐던 사람들(여성, 아이, 유대인 등) 관점에서 역사를 그려내, 새로운 시각에서 동화와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한 편 짧게 예시로 이야기해보자면, 『빨간구두』에서 주인공 카렌은 빨간 구두를 신고 춤추고 놀았다는 이유로 큰 벌을 받았다. 고작 그런 이유로 큰 벌을 받는 게 현실적으로 말이 될까? 『빨간구두』는 19세기 덴마크에서 출판된 작품이다. 출간 당시 덴마크엔 루터주의 개신교가 퍼져있었는데, 빨간색은 당시 사치와 권력을 상징하여 교황만이 쓸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 개신교에선 그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개신교에서 근면을 중시하기도 했고). 또한 빨간색은 성, 생명, 욕망 등의 이미지도 있었는데, 카렌이 성인식에서 이런 이미지의 빨간 구두를 스스로 선택하여 ‘가난하고 밑바닥 계급의 여성’인데도 자신의 욕망, 성적 매력을 자기 의지로 드러낸다는 건 당시 공동체에서 비난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큰 벌을 받게 된 것이라 설명하여 ‘함부로 욕심내면 벌 받을 수 있다’는 『빨간구두』의 단면적인 교훈에서 벗어나 여성의 관점에서 그 벌을 받는 이유가 합당한지 생각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예비독자들에게-
동화와 관련된 몰랐던 사실이나 옛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 배웠던 서양사를 다시 공부하며 되새길 수 있는 기회였기에 저처럼 서양사에 관심이 많거나, 동화를 읽을 때 설정에 불만이 많았던 독자, 동화 자체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추천하고 싶습니다. 또한 『노트르담의 꼽추』, 『쿠오레』처럼 다소 생소한(?) 동화, 여태껏 이름만 알고 보지 않았거나 이름도 처음 듣는 동화가 나오더라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을 만큼 동화 줄거리를 잘 정리해줬다는 의견이 독서 모임에서 공통으로 나왔기에 몰랐던 동화를 알아갈 기회가 될 듯합니다.
-인상 깊은 문장-
백마 탄 왕자가 공주를 만나 결혼하는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볼 때 원래는 남자가 결혼으로 신분 안정을 꾀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린다'는 표현은 여성이 수동적으로 남성의 구원을 기다리거나 신분 상승할 기회를 찾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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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동화의 이면을 보여준다는 책의 핵심 콘셉트에만 집중하지 않고, 소수의 입장에서 역사를 다소 강하게 비판하다 보니 책의 콘셉트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다소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아서 개인적으로 그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동화가 핵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동화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도구고 그를 통해 역사를 재조명하는데 집중하는 느낌? 작가님의 의도겠지만 워낙 드물고 흥미롭고 좋은 콘셉트다 보니 다소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