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서재에 빈틈없이 내심 인테리어의 일부인 듯 정갈하게 꽂아둔 소설책 몇 권을 읽어가면서도 소설 자체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쎄, 소설은 막연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문학 형식이지 않나? 아니면 그저 신문기사 같은 진지한 글에다 허구적인 바탕들을 겉칠한 글일 뿐 아닌가? 그러게, 소설이 대체 뭐길래.
쿤데라는 이 질문에 답하기를, "소설은 독자적인 예술 분야다." 라고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피카소와 모네가 없는 예술계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위대한 소설의 부재는 시대의 부재를 초래한다' 고 단언하기까지 한다.
당신은 소설을 예술로서 바라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동안 없었다. 그것이 그야 당연하다. 고작 이야기에 불과한 소설에 무슨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독자성을 지닌 예술 형식이라고 쿤데라는 떠드는가?
자, 다시 돌아와 책의 제목 '커튼' 에 주목해보자. 커튼은 무언가를 가리기 위한 휘장이다.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창틀 윗단에 쇠사슬로 엮인 커튼이 걸리고, 연극 무대 뒤에 기계장치들을 숨기기 위한 커튼도 존재한다.
세계는 그러한 커튼이 둘러진 거대한 천막이다. 세계의 기본소는 인간이다. 인간은 가정용 페르소나, 사교용 페르소나, 직장용 페르소나, 학교용 페르소나를 여럿 겸비해서 활보한다. 말하자면 가면무도회의 집합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러한 페르소나를 감히 벗으라고 그 사람들에게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가? 아니, 단언코 불가능하다. 자신의 페르소나도 내려두기도 두렵다. 그래서 우리는 커튼 표면에서 살아가는 동시에 커튼 속에서 사는 것이다.
거기서 쿤데라는 소설이 해야할 역할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해석적' 커튼을 찢는 것, 그것이 비로소 소설만이 해낼 수 있는 반기성적 일감이다."
이렇듯 쿤데라는 소설의 역사와 역할, 의미 등을 핵심적으로 서술해나간다.
책에서 나오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특질 없는 남자> <돈키호테> <소송> <성> <마담 보바리> <감정 교육> 등등.
위에 서술된 작품과 어느정도 인연이 있다면 더욱 재밌게 읽힐 쿤데라의 에세이라 자부한다.
설령 인연이 없다하더라도, 쿤데라가 주창하는 소설론은 그가 찬미하는 위대한 소설만큼이나 인상 깊은 글이다. 소설의 전반적인 개론을 알고 싶다면 더욱 추천한다. 소설은 그의 통찰을 거쳐 새로운 위상으로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