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3대 장편 소설 중 유일하게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 바로 『소송』이다.
주인공 요제프 K는 어떠한 소송에 휘말려 들어서는 그 기소 이유도 전혀 알지 못한 채 소송을 진행한다. 이 소송 자체의 비개연성이 시사하는 바는 굉장히 크다. 우리는 어떠한 비난을 받았을 때 반드시 그 이유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그 이유에 대해 해명하고, 잘못되었다고 바로 잡고, 때론 인정하며 비난을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이것이 한낱 개인적인 일에 불과하다면, 요제프 K가 당한 소송은 다소 국가적 차원의 일이다. 처음 요제프 K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헛웃음 짓지만 소송은 생각보다 오랜 기간 동안 진척되지 않아 요제프 K는 초반 기세등등한 모습과는 다르게 변호사를 찾아다니고 법원계 인사와 교류하려고 노력한다.
이 작품의 주요 포인트는 시간이다. 요제프 K 개인의 시간은 밀도 있게 빠르게 흘러가며 소송을 기다리지만 법원의 시간은 그에 비해 굉장히 더디게 흘러간다. 그러는 동안 요제프 K는 직장에서나 가문에서나 사생활에서나 엄청난 피해를 입지만, 법원은 그 사실을 전혀 괘념치 않고서 소송 절차를 차근차근 예비해나간다.
사실 이는 카프카만이 다루는 관료주의에 대한 독특한 비판이다. 소송 자체의 비개연성도 위와 같은 답답함을 자아내는 데 크나큰 공헌을 한다. 대체 요제프 K의 기소 사유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카프카적 텍스트의 그로테스크함을 더해주는 조미료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하여 그것이 곧 삶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이 되고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원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이 된다. 사실 이 같은 해석들은 카프카의 작품 풍미를 더욱더 깊게할 뿐이다.
그러니 이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질문에 고통을 느끼기 싫다면 소송 자체를 하나의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하나의 농담으로 제쳐둔 후 요제프 K의 실존을 주의깊게 바라보라. 그 순간 카프카의 작품은 다시 한 번 그만의 미학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