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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도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저/윤성원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내 짧은 독서 경험(그것도 오로지 소설만을 내리 읽어온)에 비추어 보건대, 
유명한 작가들의 문단 데뷔작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아주 강렬해서 당시 문단을 뒤흔든 작품이거나, 

조금은 미숙하지만 그 안에 숨은 잠재력이 무수하게 엿보이는 작품이거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이 중 어떤 유형일까,

골똘히 고민할 필요도 없이 아마 후자에 가까운 작품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 나는 비록 하루키의 광팬은 아니지만 그의 여러 작품을 감명 깊게 읽은 독자로서 그의 글 실력을 어느 정도 익히 고평가하고 있으며 그래서 이 작품은 그의 명성에 비해 다소 졸작이라는 것을 당장 이 지면에 단정지어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작품에 녹아든 하루키의 '가능성'이다. 

누군가의 '가능성'을 포착하려면 그에 견줄만한 다른 비슷한 비교군이 필요한데, 나는 이 작품의 비교군으로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작품을 꺼내들고 싶다.

여기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줄거리를 발설하는 것은 그야말로 논점 이탈이므로 핵심만 간단히 짚고 넘어가겠다. 이 두 작품은 서로 서술 스타일이 비슷하고, 사랑 이야기이며, 내면 묘사도 사강의 것이 좀더 지지부진한 면이 있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둘 중 어느 작품이 뛰어난지는 말하고 싶진 않다. 취향 차이도 고려해야하고, 아무래도 사강은 이 작품으로 인해 고전 작가 반열에 들어선 상태이니까, 두 작품 사이의 우열을 헤아리긴 어렵다.

다만, 하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하루키의 작품이 보다 더 다채롭다는 점이다. 

사랑 이야기 하나에 갇혀 있지 않고 끊임없는 플롯과 소재를 이끌어내는 것이 하루키 데뷔작의 특징이다. 친구 쥐가 지어낸 소설을 바탕으로 한 액자식 서술, 라디오 녹음 현장으로의 공간 이동, 의문의 동창생이 던져준 레코드 맥거핀, 바텐더 제이의 강렬한 존재감.

그런 플롯과 소재들이 소설 곳곳에 적재적소로 배치되어 소설의 풍미를 한층 더 강화시키고 소설을 끌고 가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은 오로지 사랑 이야기 하나만을 답습한다. 기존 형태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관을 매력적으로 확장시키는 능력, 이것이 바로 하루키의 '가능성'인 것이다. 

하지만 초반부에 힘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지 후반부에 이를수록 빈약한 껍데기만 남는다는 인상이 들곤 한다. 그것이 이 작품의 한계이고, 이 작품이 그저 하루키의 '가능성'에 머물 수밖에 없는 무지하게 아쉬운 이유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작품은 이제 막 펜을 집어든 작가의 데뷔작이지 않은가. 앞으로 남은 작품 여정의 첫 단계로는 아주 훌륭한 처녀작이 아닐 수 없다. 다름 아닌 스타 작가(혹은 대문호)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이고, 그런 점을 감안해보면 이 작품에서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져 감탄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작품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에 담긴 여러 소재가 이스터에그처럼 한가득 들어있다. 하루키 초기작 유물로 보나, 서투르지만 매우 유망한 '가능성'의 족적물로 보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팬심을 충족시키기에도 여러모로 좋은 작품이 되어 여러분을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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