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세 번 정도 완독한 기억이 있는데, 이 단편집 안에 수록된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과 <테디>는 내게 너무도 완벽한 작품이어서 따로 펼쳐 놓고 여러 번 더 읽어본 것 같다.
이 책으로 인해 나는 지금 고인이 되어버린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완벽한 팬이 되었고, 심지어 샐린저를 처음 접한 작품인 <호밀밭의 파수꾼>은 이 책으로 인해 유치해질 정도였다.
우선, 이 단편집에 대한 독자들의 오해를 풀어야겠다. 총 두 가지 정도의 선입견적인 이유로 <호밀밭의 파수꾼>에 감명 받은 독자들조차 이 책을 사서 읽기를 기피하는 듯 보이는데, 그 두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아홉가지 단편들이 너무 어렵고 난해하여 독자 스스로가 멍청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는 점.
둘째, 이 아홉가지 단편들은 전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만' 쓰여져 기술적인 부분이 떨어진다거나 내용 파악이 어려울 것 같다는 점.
결론부터 말해야겠다. 이 두 가지 가설들은 확실한 오해다. 다만 내용 파악이 어렵고 난해하다고 정평이 난 작품들에는 줄거리상 그 중심이 되는 상징물 하나씩 있을 뿐이며, 그것이 상징물이라는 것을 인식되는 순간 작품 독해는 쉬워진다. 단지 그 뿐이다.
그리고 의식의 흐름 기법 따윈 없다. 모두가 정교하고 세밀한 플롯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들뿐이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기승전결이라는 확고한 형태에서 벗어난 괴상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보인다.
아마 이 작품들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스토리 진행상의 대화문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생각건대, 그것은 대화문 중심의 스토리 전개가 대다수 독자들에게 익숙치 않은 탓이다. 하지만 이 역시 대화문을 하나의 서술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저 느끼고, 인물의 생동감을 상상하며 그들의 대화하는 언어들을 쉽게 받아들이면 이 작품은 걸작이 된다. 단순히 어렵다는 이유로 이 단편집들을 기피하는 독자들이 너무 안쓰럽다. 하나도 어려울 게 없다. 익숙치 않을 뿐이다.
이 단편들의 중심 제재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참전자들이 느끼는 전쟁의 '트라우마'와 그다지 어렵지 않은 '불교 비슷한 종교관'이다. 의도적으로 독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신파 없이도 단편들의 핵심 주제들이 강렬하게 전해지는 것이 이 단편집의 특징이다. 대화문만으로도 작은 어린 소년이 갖고 있는 심리적 병약 상태의 섬뜩함을 드러내고, 과거 이야기의 전모가 밝혀지게끔 하는 샐린저의 기술적인 서술을 볼 수 있다. 여러모로 대단한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