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방식의 몇 가지 본능들이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한다는, 분명히 세상이 좋아졌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편향된 시선을 깨야 한다는 주장이 이 책의 요지다. 세상의 상황들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하려 하고, 기존의 믿음을 일반화하려고 하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아닌 단일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고, 사건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타겟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본능 등이 세상을 오해하게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난 몇 십 년간 세상은 꾸준히 발전해 훨씬 괜찮아졌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오해하고 있으니, 이제 'Factfulness - 사실에 충실한 해석력'으로 세상을 바로 보자는 거다.
저자가 '사실'을 직시하는 수단으로 삼는 건 '수치'다. 소득과 생활 수준, 기대수명을 수치화한 통계를 근거로 모든 국가를 4단계로 나눈다. 4단계로 갈수록 소득이 높고 위생적이며 안전한 기반에서 생활하는데, 세계 인구의 20%가 1단계, 60%가 2~3단계, 20%가 4단계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4단계 국가다. 여기까지는 좋다. 세계 인구의 대다수가 적어도 중간 단계의 삶을 누리고 있으니, TV에서 자주 접하던 '소말리아' 단계 정도의 삶이 우리 생각만큼 만연하지 않다는 바는 알겠다.
그러나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저자는 이 4단계 수준 외에도 여러 통계 수치를 통해 세상이 나아졌음을 어필한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이 20%가 안되는 나라는 예외적으로 몇몇 나라 뿐이며 '기껏해야' 세계 여성의 2%가 그런 나라에 살고 있으므로 현재 전지구의 기본적 교육 수준이 높아졌다고 한다. 또한 전기를 공급받는 가구는 전체의 80% 이상이며, 예방접종을 받은 어린이는 전세계 어린이의 80% 이상으로 보건 수준 또한 높아졌다고 한다.
저 숫자를 액면 그대로 믿어도 될까. '기껏해야 세계 여성의 2%'라는 수치를 보자. 단순히 '2'라는 숫자는 적어 보이지만, 비율이 아닌 실제 수치로 생각하면 약 6천5백만이다. 남한 인구보다도 많은 여성이 아직 기본 교육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으며, 그런 나라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열악한 수준에서 살고 있는 여성까지 합하면 훨씬 많을 것이다.
또한, 전기를 공급받는 가구 80%에는 '일주일에 평균 60회 정전이 되는' 가구도 포함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루 평균 8~9회 정전이 되는 꼴이고, 이런 환경에선 복구가 신속하지 못할 것이란 걸 감안하면 전기를 '제대로'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란 걸 짐작할 수 있다. 예방접종의 기준은 또 어떤가. 단 한 번이라도 접종을 했다면 수치에 포함된다고 한다. '필수 예방접종'이 열댓가지는 넘는 상황에서 단 한 번까지 포함시켜 보건 수준을 논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세상이 좋아졌다'는 말을 하기에 저자가 내세우는 수치들은 너무 나이브하다. 느슨한 기준 아래 계산된 퍼센테이지, 상황을 너무 간결화시키는 이 수치 안에서, 많은 실제적인 삶이 게눈 감추듯 지워졌다. 단순한 숫자 그 이면의 삶들이 무리하게 '좋은 통계'의 그늘에 편입되었다.
저자가 소득수준으로 세계를 나눈 것 또한 마뜩잖다. 단순히 인프라와 소득 수준으로 삶의 형편을 규정하는 건, 다같이 못 살던 산업화 시대에나 걸맞는 기준이다. 최근 2~30년 동안 세상은 굉장히 발전했고 삶의 기준 또한 바뀌었다. 이 기준으로는 '세상이 발전했다'라는 말은 할 수 있어도, 삶의 질에 대한 가치판단을 겸한 '좋아졌다'라는 주장은 걸맞지 않다.
그러면 도대체, 세상이 나아졌다는 건 뭘까? 좋아졌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 세상이 좋아졌다고 판단할 근거로 저자가 제시한 기준이 옳다고 치더라도, 모두가 최고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분명한 격차가 있는 지금, 전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하위 단계에 살고 있는 지금, '세상이 좋아졌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세상이 좋아졌다는 말은 언제 할 수 있을까? 누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4단계 최상층에 사는 저자? 태어나기 이전부터 4단계에 진입한 국가에서 태어난 나? 아니면 마침내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온 사람? 발화자가 어느 쪽의 입장일 때, 세상이 좋아졌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저자는 세상이 좋아졌으니, 더이상 부정적으로 세상을 곡해하지 말고 파티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단언컨대, 축배를 들기엔 이르고 심지어 한참 멀었다고 생각한다. 까마득하게 늘어선 내 뒤의 삶들을 보고도, 내 앞의 삶들을 보며 파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진짜 사실'이 온 세계의 평안을 말할 때, 그때 비로소 '세상이 좋아졌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