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6학년 밖에 안 된 유마라고 하는 어린아이입니다. 유마는 소설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책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사고력이 뛰어나고 현상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똑똑한 아이예요. 성격도 또래에 비해 꽤 조숙하고 차분한 편입니다. 유마에게는 아주 독특한 부분이 있는데, 이걸 능력이라고 해야 할지 어떨지. 유마는 가끔 현실이 아닌 공간과 접촉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본인의 의지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힘’ 이라는 표현은 다소 어색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이 공간으로 휩쓸렸다가도 반드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니까 어찌 보면 ‘능력’이 맞긴 하죠. 어쨌든 본인에게는 썩 유쾌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또 이계로 휩쓸리지는 않을까 경계하고 또 경계하고 있답니다.
이런 부분들만 제한다면 그냥 저냥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유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불행으로 생활에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소설가인 아빠가 어느 지방의 묘지에 취재여행을 갔다가 원인불명의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병사하게 되고 만 거죠. 아빠의 사망으로 엄마는 두 식구의 생계를 위해 술집으로 일을 나가게 되고, 거기서 세토 도모히데를 만나 재혼하게 됩니다. 유마에게 새아빠가 생긴 거죠. 그것도 잘 안 팔리는 소설가였던 친아빠와는 다르게 돈이 많은 부자 사장님 아빠가 생긴 겁니다. 하지만 유마는 별로 달갑지 않았어요. 아빠를 너무 좋아했던 탓인지 새아빠인 도모히데에게는 쉽사리 정을 붙이질 못했죠. 그러는 중에 엄마는 임신을 하게 되고, 새아빠는 해외로 발령이 나버립니다. 새아빠의 발령으로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된 유마는 도모히데의 유일한 혈육이자 이복 남동생인 도모노리에게 의탁하게 됩니다.
도모히데보다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도모노리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던 유마는 거부감 없이 도모노리를 따라나섭니다. 마침 방학을 맞은 터라 잠시 동안 도모노리가 소유하고 있는 시자쿠 지방의 별장지, 오쿠하쿠쇼의 고무로 별장에서 지내기로 한 거죠. 이곳은 지역 유지나 화족출신들 또는 재벌들의 별장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도모노리는 젊은 날 이곳에서 별장지기로 일을 하다가 고무로 집안의 손자가 행방불명된 것을 찾아준 답례로 고무로 별장을 받은 것이었죠. 별장지로 유명한 만큼 경치는 끝내주지만 이상하게도 유독 원인불명의 실종사건이 잦은 지역이었습니다. 고무로 별장으로 가는 동안 도모노리는 유마에게 단단히 다짐을 받습니다. 별장 뒤에 있는 숲인 ‘사사 숲’에는 절대로 혼자 들어가지 말라고. 사사 숲은 도모노리가 젊은 날 고무로 집안의 행방불명됐던 손자를 발견한 장소이지만 어쩐지 조금 꺼림칙한 곳입니다.
“사사 숲? 무슨 뜻이야?”
“오쿠하쿠쇼에서 옛 목재 운송로를 따라가다 보면 ‘가가구시’라는 지역이 나와.” 삼촌은 한자를 풀어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곳에는 마을이 있는데, 옛날에 아이들이 ‘가미카쿠시(어린아이가 갑자기 행방불명되는 일로 옛날에는 마신의 소행으로 여겼다)’ 요컨대 행방불명되는 일이 꽤나 잦았대. 그래서 가가구시 마을이 아니라 가미카쿠시 마을이라고 불렸다지. …… 아마도 ‘가가구시’라는 말은 여러 마리의 뱀이라는 뜻인가 봐.”
“사사 숲의 ‘사’가 뱀이란 뜻이라고?”
“그런 모양이더라고.”
사사 숲에 대한 설명을 들은 유마는 이계에 휩쓸리는 자신의 능력을 떠올리곤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고무로 별장에 도착한 유마는 도모노리의 동거인인 사토미를 만나고, 도모노리가 다시 볼일을 핑계로 별장을 떠나자 그녀와 함께 별장에서 며칠을 보내게 돼요. 사토미는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 샌가 유마는 별장에서 사토미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누군가가 사사 숲에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받고요. 우연히 만난 하쿠쇼의 별장지기로부터 오쿠하쿠쇼에 있는 별장들에 얽힌 불길하고 기분 나쁜 이야기들을 전해 듣기까지 하면서 불안한 마음은 커져만 가죠. 그러던 중에 유마는 ‘세이’라는 친구를 사귀고, 그와 함께 도모노리가 절대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사사 숲으로 발을 들이게 됩니다.
과연 유마를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사사 숲’에서 유마가 겪게 되는 일은 무엇일까요? 왜 그곳에서는 그렇게도 빈번하게 가미카쿠시가 발생하게 되는 걸까요?
떡밥이거나, 초대장이거나, 어쨌거나 어서 오세요! 미쓰다 월드에
오랜만에 미쓰다 신조의 책입니다. 작년에 구입했는데 이제야 읽었네요. 『마가』는 ‘집 시리즈’로 분류되나 봅니다. 어린 화자가 새로 이사한 집에서 겪는 괴이한 이야기들을 묶은 시리즈가 ‘집 시리즈’인데, 2007년에 출간된 『화가』를 시작으로 2008년 출간된 『흉가』 에 이어 2010년 출간된 『재원』까지 집 3부작으로 일단 시리즈는 완결이 지어진 모양세였습니다. 그런데 2017년에 『마가』가 이전에 출간된 집 시리즈와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이 됐습니다.(일본에서 출간된 기준입니다) 구성이 동일하기 때문에 일본 팬들은 『마가』도 집 시리즈로 구분한 다네요. 작가의 의도야 어찌됐든 현지에서는 『마가』가 집 시리즈의 외전 격으로 인식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국내에선 북로드에서 2016년에 『흉가』와 『화가』을 연이어 내준 이후로, 다음이 있다면 당연히 『재원』이 출간될 줄 알았는데 3년이나 지나서 『마가』를 출간해 주다니 조금 의외였습니다. 『재원』도 조만간 출간이 될지, 어떨지?!
미쓰다 신조는 작가로 데뷔한 이래 시리즈물은 물론 스탠드얼론 중·단편집들까지 꽤 많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2001년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을 시작으로 2019년 까지 일본에서 출간된 장편, 중·단편 책들을 헤아리자면 40권이나 됩니다. 국내에도 적잖이 많은 작품들이 소개됐음에도 불구하고 저 숫자를 보니 아직도 갈 길이 머네요. 이마만큼이나 정력적으로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독자들 사이에서는 자기복제에 대한 쓴 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글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가 여전히 매력적이라 저는 참 좋아합니다.
글의 분위기도 매력적이지만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미쓰다 신조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시리즈물과 단편집들 사이에서 세계관이나 사건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하거나 연상시킨다는 점인데요, 각각의 다른 시리즈, 다른 이야기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 한 인상을 풍기며 소설에 묘한 현실감을 부여하는 장치인 것이죠. 이를테면, 집 시리즈 1편인 『화가』에서 주인공 코타로가 이사 간 무사시 나고이케에는 ‘4대 유령의 집’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작가 시리즈 1편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의 배경이 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번 소설 『마가』에서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지는 ‘사사 숲’은 가가구시 촌과 인접한 곳인데, 가가구시 촌은 도조 겐야 시리즈중 하나인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의 배경이 되는 곳 입니다. 이 외에도 같은 이름이 같은 시리즈 내에서나 다른 시리즈에서 등장한다든지(동일인물인지 동명이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소설 속의 이야기로 묘사된 사건이 다른 책에서는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묘사된다던지 하는 식입니다. 마치 게임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스터에그처럼, 이야기에 중대한 영향은 끼치지 않지만 진실인 듯 허구인 듯 다른 이야기에 현실감을 부여해 주고 있는 것이죠. 독자 입장에서는 발견해 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 특히 그런 부분이 두드러졌습니다. 저도 작가의 전작을 읽은 것이 아니고, 또 어떤 책은 읽은 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금방 읽고 나서는 작가가 떡밥만 잔뜩 던져놓고 제대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조금씩 곱씹고 보니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른 작품들을 언급해 놓았던 것이더군요. 그래서 다른 책을 다시 찾아보기도 했는데, 그게 의외의 재미였습니다. 이 책으로 미쓰다 신조를 처음 접하신 분들이라면 다소 책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 작품들을 읽었더라도, 워낙에 국내 출간은 텀이 길고 순서도 뒤죽박죽 이다보니 저처럼 ‘이게 뭐야’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부분이 이 책의 장점이자 가장 큰 단점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어쨌든, 『마가』에서 등장한 미쓰다 신조 월드에 대해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유마 친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서
책에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습니다만, 유마의 아빠는 산속의 이상한 묘지 같은데서 취재를 하다가 원인불명의 병을 얻어 사망합니다. 단순한 병사가 아닙니다. 책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위험하고 이상한 묘지라고 하니 작가시리즈인 『사관장』, 『백사장』 시리즈가 떠오릅니다. 집 시리즈 1편인 『화가』에서도 『사관장』, 『백사장』의 배경이 되는 곳이 등장합니다.
2. 오쿠하쿠쇼의 불길한 별장들
유마가 도모노리 삼촌과 방학동안 머물게 된 고무로 별장은 시자쿠 지역의 별장지인 오쿠하쿠쇼에 있는 세 동의 별장 중 하나입니다. 나머지는 시자쿠 신사의 신관이 세운 간베키 장(암벽장), 그리고 남은 한군데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아요.
별장관리인의 말에 따르면 오쿠하쿠쇼의 별장은 모두 불길한 장소입니다. 유마가 머무는 고무로 저택은 고무로 가의 손자가 가미카쿠시를 당했다가 극적으로 돌아왔다는 사건이 있었고, 간베키 장에서는 30년 정도 전 고등학생들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간베키 장에서 발생한 사건의 전말은 작가 시리즈 2탄 『작자미상, 미스터리 작가가 읽는 책』에서 [미궁초자]라는 동인지속에 실린 소설로 소개된 바가 있습니다. 다만 그 책에서는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소설 속의 이야기였죠. 제목은 「슈자쿠의 괴물」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찾아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개인적으로 『작자미상, 미스터리작가가 읽는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였어요.
3. ‘사사 숲’과 ‘가가구시 촌’
이번 책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공간이자, 유마가 아주 무서운 읽을 겪게 되는 곳이 바로 ‘사사 숲’입니다. 집 시리즈는 추리보다는 호러에 집중한 시리즈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설명하지 않고 모호한 채로 덮어두는 부분이 있어요. ‘사사 숲’에 대한 것이 특히 그런데, ‘사사 숲’, 가미카쿠시, 체인질링, ‘가가구시 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도조 겐야 시리즈인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을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물론 명쾌한 무언가를 바란다면 기대에 어긋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4. 떡밥인가? 요시카와 키요시
요시카와 키요시는 집 시리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1편 『화가』에서는 주인공 코타로가 전학가기 전 초등학교 친구로 등장하고, 2편 『흉가』에서도 주인공 쇼타가 이사 가기 전에 다녔던 초등학교 친구로 나오지요. 그 요시카와 키요시가 맞는지 동명이인인지 알 수 없지만은, 『마가』에서도 요시카와 키요시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별장 관리인이 오쿠하쿠쇼에 있는 세 별장들 모두 불길한 사연이 있다고 말하며 “셋 다 요시카와 키요시라는 아이가……”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간베키 장에 대해서는 읽은 지가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고무로 저택에 관련해서도 요시카와 키요시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뭔가 뜬금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작가의 특성상 어딘가 다른 이야기에서 다뤘거나 앞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큰 떡밥이지 않나 싶네요.
5. 떡밥인가? 호박 남자 혹은 호박 사나이
호박 남자는 유마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유행하는 괴담 속에서 등장합니다. 몇 십 년 전에 무사시 나고이케라는 지역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범인은 호박남자였다고 하는 것이죠. 피해자는 모두 어린아이였는데, 어째서 호박남자인 건지, 살인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피해자는 몇 명이고 결국 범인은 잡혔는지 어쩐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호박남자는 <호박머리의 노래>라는 우스꽝스럽지만 왠지 모르게 으스스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등장하는데, 피해자들은 그 노랫말에 따라 살해됐다고 합니다. 뜬금없는 괴담의 등장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떠올려보면 집 시리즈 1편 『화가』에서도 호박남자가 등장했었습니다.(『화가』에서는 호박 사나이로 번역돼 있어요.) 『화가』의 주인공 코타로가 이사 간 동네가 바로 무사시 나고이케이며, 그 동네에는 ‘나고이케 4대 유령의 집’이라는 흉흉한 네 채의 집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작가시리즈 1편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의 배경인 인형장이고, 그중 다른 하나가 노가와 강변의 폐가인데, 이 집이 호박 남자와 관련돼서 참변을 당한 피해자의 집인 것이죠. 이쯤 되면 지나가는 떡밥치고는 상당히 구체화되어 있는데, 이미 출간된 책에서 다룬 이야기인지 앞으로 나올 이야기인지 알 수 없지만 호박남자가 대체 왜 그랬는지는 상당히 궁금해집니다.
6. 정말 궁금한 유마의 이계체험기속 이야기
유마가 이계를 체험하는 것은 책 속에서는 3번인데, 그 중 첫 번째 이계체험은 어떤 이야기에 휩쓸린 것이기도 합니다. 소개된 부분을 옮겨 적자면
“남자는 저녁이 되자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어딘가로 데려간 것입니다. 마을 아이들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무슨무슨 남자’라는 괴인에 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유마가 이야기를 자세히 들으려고 가보니 결국 스스로도 모르게 이계로 발을 들여 버렸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유마는 무언가에 쫓기는 아주 무서운 경험을 하게 되지요. 여하튼, 그렇게 유마를 이계로 이끈 ‘무슨 무슨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감질나게 이어집니다. “……남자는 새로운 마을에 찾아왔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 마을에서 …남자는 대체 어떤……. 그러면 …남자의, 네 번째 시작…” 이렇게 끝나버려요.
두 번째 이계체험기에서도 기묘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또 옮게 보자면 “……우리 선조, 적통, 나라를 세우고, 넓고 넓은, 덕을 쌓음이, 깊고 깊도다! 우리 백성, 능히 충성하고 효행하여……” 첫 번째 이계로 이끌었던 이야기와는 다르게 내용을 짐작하기 힘드네요. 두 번째 이계체험에서도 유마는 무시무시한 무언가에 쫓기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쫓기는 긴박한 상황묘사는 미쓰다 신조가 소설 속에서 공포감을 조성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일부러 두 챕터나 할애한걸 보면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두 번의 경험은 『마가』라는 전체적인 이야기 속에서는 보면 간략한 정도만 남기고 드러내도 무방할 만큼의 연관성밖에 없겠다 싶을 정도로 따로 놀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 혼자 추측해 보기로는, (추측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망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계’라는 건 어쩌면 미쓰다 신조의 다른 소설 속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디오 채널이 합선되듯이 유마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쓰다 신조의 다른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그러니까 마치 유마의 이계체험은 미쓰다 신조의 다른 소설의 예고편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물론 근거는 없습니다만, 첫 번째 ‘무슨 무슨 남자’ 이야기는 마치 ‘호박머리 남자’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진실은 작가만 알겠지만 말이죠.
마지막으로 표지에 대해서
사실 『마가』의 큰 이야기줄기는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별로 대단하진 않아요. 나름의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기발하지도 않고, 추리적인 요소도 많지 않습니다. 추리적인 트릭은 있을 지언즉, 추리적인 명쾌함은 부족한 이야기라고 정리하고 싶네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주절주절 나열한 이유들로 저는 매우 즐겁게 읽었습니다. 읽는 도중보다 읽고 난 다음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매우 신기하게도, 아주 흥미롭게도.
책을 덮고 나서는 어째서 제목이 『마가』인가 한참을 생각해 봤습니다. 원제는 『魔邸』인데, 풀이하자면 ‘마의 저택’ 이나, ‘마물이 깃든 저택’ 정도가 되겠습니다. 제목으로 집을 내세울 정도로 고무로 저택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소재로서 큰 존재감을 발휘하진 못합니다. 고무로 저택보다는 오히려 저택의 뒤에 있는 ‘사사 숲’이 미스터리한 공간으로서 책의 시작부터 후반부까지 강력하게 부각되죠. 그런데 어째서 제목이 『마가』인가에 대한 답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마물이 깃든 저택, 고무로 저택의 마물은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은 아마 하나로 통일되진 않을 것 같네요. 어떤 이는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이는 사람이 아닌 그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표지의 예쁘지만 눈매가 날카로운 아이는 책을 읽기 전에는 주인공인 ‘유마’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장을 덮고 나니 ‘유마’가 아니라 ‘세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보니 책의 제목이 『마가』 인 것이 납득이 됐어요. 더 적으면 스포일러가 되겠으니 적당히 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만족스럽지 못하고 찜찜한 느낌만 들었다면 위에 소개한 미쓰다 신조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저는 이 책으로 미쓰다 신조의 다른 책들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맨날 비슷하고 자기복제만 한다는 욕을 먹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참 매력적인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