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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도서] 초크맨

C. J. 튜더 저/이은선 역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5점

 

이야기는 앤더베리라는 작은 시골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에드와 개브, 미키, 호포 그리고 니키는 서로를 우스꽝스러운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사이가 돈독한 소꿉친구들이다. 몰려다니며 천방지축으로 어울리던 그들은 개브가 생일날 분필 한 상자를 선물로 받은 일 이후로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놀이를 시작한다. 그것은 그들만이 아는 기호를 만들어 초크맨 그림과 함께 메시지를 남겨 소통하는 것인데, 단순히 만날 약속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꼴 보기 싫은 누군가에게 욕설을 남기는 것 까지 놀이의 용도는 꽤 다양하고 메시지의 의미도 여러 가지였다. 잠깐, 만날 약속이나 비밀대화 같은 건 핸드폰 단톡방을 파거나 sns dm을 보내면 될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이야기에 의구심이 들 수도 있겠다. 이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나이는 12살이고 그들이 12살이던 그 해는 1986년이었다.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들이 초크맨 놀이를 시작한 이후로 작은 시골동네에는 아홉시 뉴스에 나올법한 강력사건들이 줄지어 발생하기 시작한다. 동네 양아치 남학생이 강물에 빠져 익사하는 사건(사건으로 사망한 동네 양아치는 미키의 친형이었다.), 호포가 기르던 노견이 독에 중독되어 죽은 일, 동네 목사님이 심각한 폭행을 당해 빈사상태에 빠진 사건(폭행당한 목사는 니키의 아빠이다. 그의 등에는 날개모양의 자상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동네 숲속에서 토막 난 소녀의 시체가 발견된 일 까지. 일말의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사건들에는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사건 전후로 사건을 묘사하는 듯한 초크맨 낙서가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 낙서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본 것은 에드와 그 친구들뿐이었다.

 

특히 마지막 사건인 소녀 토막사건은 소녀의 머리가 발견되지 않아 충격을 더했는데, 초크맨 그림에 이끌려 토막 시체를 발견한 것이 에드 일행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뜻하지 않은 유명세를 타야 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터져오를 듯 부글대던 초크맨 사건에 대한관심은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사그라졌다. 아이들의 관계도 여느 동네친구들의 사이가 그러하듯 점차 소원해져 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6,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앤더베리를 지키고 있던 에드, 개브, 호포에게 초크맨이 그려진 의문의 우편물이 날아든다. 때맞춰 도시로 떠나 나름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던 미키가 갑자기 앤더베리로 돌아와 에드를 찾아온다. 그는 과거에 벌어진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을 알아냈다며 초크맨에 대한 책을 출판할 뜻을 밝히고 에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한때 친구이긴 했지만 사이가 소원해진지 오래였기도 하고, 유년시절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초크맨에 대한 기억을 다시 헤집으려 하자 불편해진 에드는 미키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어쩔지 고민을 한다. 에드를 고민에 빠뜨리고 돌아간 미키는 다음날 강에서 익사한 시체로 발간된다. 그리고 아마도 미키가 사망한 그 밤, 에드의 집 앞에는 다시 초크맨 낙서가 등장하는데!!

 

 

사건의 진실은 누군가의 비밀

 

유년시절의 충격적 경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여전히 그 그늘에 메여있던 에드가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그날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다는 게 큰 줄거리다. 사건이 벌어졌던 1986년과 어른이 된 현재 2016년을 오가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에드와 친구들, 그 부모들, 새로 부임해 온 학교 선생님, 동네 축제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누나들, 교회 사람들, 시위대 등 등장인물들이 꽤 많다. 1986년에 벌어지는 굵직한 4개의 사건들 외에도 동네 친구들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사건들, 또 그 일의 결과로서 현재에 인물들의 변화된 관계가 차례로 소개되며 이야기는 뒤죽박죽 복잡하게 얽혀간다. 어린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어른들의 사정과 사건의 이면을 성인이 되어서야 깨닫게 된다는 전개는 할런 코벤의 을 떠올리게 한다. 몇 차례의 우연과 은밀한 하나의 악의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사건이 미궁 속에 빠진다는 설정도 그렇다.

 

다만 에서는 그날 실종사건이 발생한 숲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초반부터 후반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며 차례차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반면에, 초크맨에서는 각각 사건의 전말이 당사자의 입을 통해 너무도 싱겁게 드러난다. 주인공이 사건에 의구심을 품기도 전에 당사자가 알아서 술술 얘기해주는 지경이라 나름 소소하게 충격적인 전개이긴 했지만 읽는 나도 주인공 에드처럼 때때로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급기야 나중에 가서는 가장 중요하고 큰 사건인 토막살인 사건에 대해 추리해 낼 때도 큰 감흥이 없었다. ,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정도.

 

 

데블이라는 영화가 있다. 존 에릭 도들 감독의 영화로 2010년 작인데, 서로 어떠한 연고도 없는 다섯 사람이 승강기에 갇히게 되면서 (오컬트 적으로) 무서운 일을 겪게 되는 내용이다. 그때 승강기 관리인인 남자가 하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승강기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목격하고는 들고 있던 젤리샌드위치를 분리해 바닥으로 떨어뜨리는데, 잼이 발라진 부분이 바닥에 닫는다. 항상 이런 식이다. 악마가 관여하면 모든 일은 반드시 안 좋은 쪽으로 흐르게 되어있다. 뭐 그런 식의 대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초크맨에서의 사건들이 그렇다. 앤더베리는 악마가 저주를 내린 동네인가, 아니면 아예 상주하는 동네인가 싶을 정도로 모든 일이 항상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간다. 안 좋음에도 정도가 있다면 가장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사람들 누구 하나(아주 나쁜 빌런 한명을 빼고는) 지독한 악의를 갖고 한 행동은 아닌데, 결과는 아주 최악이다. 그러면서도 악인은 항상 아주 끝내주게 운이 좋다. 이런 전개는 오히려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고 미스터리한 부분은 초크맨 낙서이다. 초크맨 낙서가 흥미로운 이유는 아무 관계성도 없어 보이는 사건들의 유일한 연결고리이기 때문인데, 사건의 전말이 중반부 이후부터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초크맨 낙서의 역할은 단지 무서운 분위기를 조장하는 장치로 전락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초크맨 낙서에는 이유가 있었고, 그것이 결말의 가장 기막힌 반전의 장치로 제대로 들어맞기는 하지만, 처음과 끝만 그럴듯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읽은 영미스릴러소설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시작은 스티븐 킹의 그것같았고, 전개는 할런 코벤의 을 떠올리게 했고, 마지막에는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도 튀어나왔지만, 모두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기 때문에 나름 만족스러운 독서였다고 평가한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스포일러가 될까?

 

마지막으로 아주 강렬했던 개브의 대사를 옮겨 적어 본다.

예전에 누가 그러더라. 비밀은 똥구멍이랑 같다고. 없는 사람이 없다고. 남들보다 더 더러운 사람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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