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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

[도서] 야시

쓰네카와 고타로 저/이규원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바람의 도시>

 

그곳은 고도라고 부른다. 귀신의 길, 죽은 자의 길, 혼령의 길, 나무그림자의 길 혹은 신의 통행로라고도 한다. 현실 세계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현실세계와는 분명하게 분리되어 있는 아주 미스터리한 공간이다. 그곳은 헤아릴 수도 없이 까마득한 옛날부터 존재했으며, 오직 신들이나 요괴, 일부 허락된 인간만이 출입할 수 있다.

 

내가 처음 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일곱 살 때로, 아빠와 함께 벚꽃놀이를 갔을 때의 일이었다. 인파속에서 아빠를 놓치고 미아가 된 나는 길을 헤매다 모르는 새에 고도에 들어가게 된다. 어떤 여인을 만나 운이 좋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날의 경험은 아주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는다.

 

다시 그곳에 가게 된 것은 나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5년 뒤, 나는 친구 가즈키에게 잊지 못할 그곳에서의 경험을 들려줬다.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가즈키는 고도에 가고 싶어 했고, 우리는 모험을 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곳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어 갈 때까지 고도를 헤매기만 할 뿐,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요괴들이 다니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던 때, 고도를 여행하는 청년 렌을 만난다. 여행자 렌의 도움을 받아 고도를 나가려고 했지만, 렌과 안면이 있는 듯한 괴인의 습격을 받아 그만 가즈키는 목숨을 잃는다.

 

고도에서 사망하여 고도의 일부가 되어 버린 가즈키는 그대로 고도에 묶여버렸고, 나는 그런 가즈키를 두고 떠날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가즈키의 죽음에 책임을 느낀 렌이 나에게 시체를 소생시키는 비의가 전해지는 곳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나는 가즈키를 소생시키기 위해, 친구의 시체를 수레에 얹고 렌과 고도를 여행하기 시작한다.

 

 

<야시>

 

나는 야시를 경험한 적이 있다. 어릴 때, 집 근처에서 열리는 마츠리에 동생과 함께 구경을 갔었다. 저 멀리서 푸르스름한 불빛을 발견한 나는 동생을 이끌고 무작정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요괴들의 장터로, 요괴들이 갖가지 것들을 팔고 있었다. 한참을 신기하며 동생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어찌된 일인지 장터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야시를 오랫동안 헤매며 다닌 것 같은데, 날이 밝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야시에는 규칙이 있었다. 야시에 발을 들인 이상, 반드시 무엇인가 하나는 사지 않으면 야시를 나갈 수 없다.

 

돈이 없었던 나는 매우 곤란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 물건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그것은 야구선수의 그릇이라고 하는 건데, 그것을 사면 야구를 잘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가게는 재능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야구만화에 빠져있던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것이 갖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상인은 나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옆에 있는 동생을 넘겨주면 야구선수의 그릇을 팔겠다고. 야시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려면 무언가 하나는 사야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돈이 없었고, ‘야구선수의 그릇은 너무도 갖고 싶었다. 나는 동생에게 일단 야시를 나가게 되면 부모님과 함께 너를 다시 찾으러 오겠노라고 말하고 야구선수의 그릇을 샀다. 동생을 판 것이다.

 

거래가 이루어지자 나는 야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야시에서 나오자마자 집에 달려가 부모님과 함께 동생을 찾아오자 싶었지만 어쩐 일인지 나에게 애초에 동생을 없었다고 한다. 아무도 동생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원래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동생의 존재는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야시에서의 일은 모두 꿈이었나 싶었지만, 나는 거짓말처럼 야구를 잘하게 됐고, 대회에도 출전할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갖게 됐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제는 아무도 모르는 동생의 존재가 떠올랐다. 나는 동생을 팔았다. 동생을 팔아서 이 알량한 재능을 손에 넣은 것이다.

 

야구를 잘 할 수 있는 야구선수의 그릇은 나에게 야구에 대한 재능은 주었지만 그에 대한 열정은 주지 못했고, 나는 점점 괴로워졌다. 야구에 대한 흥미가 식어갈수록 동생을 팔았다는 죄책감은 날로 심해져 갔다. 나는 결심했다. 동생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다시 한 번 야시가 열리면 동생을 되찾아 오기로 말이다.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야구도 그만두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동생을 되찾아 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러기를 수년, 드디어 오늘 밤, 야시가 열린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야시>는 제 12회 일본호러대상 수상작이고, 134회 나오키상 후보작으로도 올랐던 작품이다. 놀랍게도 이게 작가의 데뷔작이란다. 앞에 실린 <바람의 도시><야시>로 수상한 후에 처음 쓴 이야기라는데 <야시>와 마찬가지로 독자들과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호러대상 수상작이라고는 하지만, 호러라기보다는 환상동화에 가깝다. 이야기 내내 깔려있는 감정도 공포라기보다는 슬픔이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깊은 아쉬움이다. 길지 않은 이야기지만 여운이 강하게 남는데, 아마 그 때문이리라. 공포보다 슬픔이 감정 끝이 기니까 말이다.

 

두 이야기의 주요한 테마는 이별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지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할 수 없는 헤어짐이야말로 허무하고 슬픈 것이다. <바람의 도시>에서 나는 썩어가는 친구의 시체를 수레에 싣고 확신 없는 여행을 떠난다. 나 혼자라면 이 세계를 벗어나 현실로 돌아갈 수 있지만, 그렇게 돌아가 버리면 친구와는 영영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안다. 소생의 땅에서 친구가 되살아날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그 불확실성에 작은 희망이라도 걸어보고 싶을 만큼 나는 친구와의 헤어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야시>에서 나는 동생과 다시 만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그 믿음은 깨지고 내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잊어버리고 싶어도 잊어버릴 수 없고, 그리움은 죄책감이 되어 나의 삶을 좀먹는다.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동생과의 이별의 순간은 나의 삶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되돌리고 싶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결국 그들과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만다는 그런 씁쓸한 이야기다.

 

여행 중에 현실세계와 맞닿아 있는 이세계로 들어가 고난을 겪는다는 전개는 야마시로 아사코의 엠브리오 기담을 떠올리게 한다. 행방불명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미스터리하고 무서운 분위기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점은 모리미 도미히코의 야행과 비슷하다.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착실하게 복선을 깔고, 여러 인물들의 시점에서 이야기의 숨겨진 이면을 전하며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는 전개가 자연스러워서 반전을 위한 반전 같은 어색한 느낌이 없었다. 다만 호러소설대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기대했지만 그 기대가 무색하게 너무 슬픈 이야기여서 당황스러웠다. 추리물도 아니고 본격 호러물도 아니고 울리려고 작정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그런 모호함이 계속해서 흥미를 유발했고, 분량도 짧아서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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