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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도서]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저/김윤수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에 검은숲에서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을 소개하면서 알려진 구라치 준의 단편집이다. 당시에는 나도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책인데, 그때 한참 ‘~의 살인이라든지 ㅇㅇ장의 살인이라든지 하는 책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라 이내 흥미를 잃었었다. 결국 다시 찾아 읽진 않았지만 그 책 때문인지 나에게 이 작가는 본격 추리물을 쓰는 작가라는 인상이 박혀서 이번 책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상당히 의외였다. 작가는 역시 작가다.

 

ABC살인

 

묻지 마 살인이 난무하는 시대, 나 역시 누군가 죽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나는 빚에 쪼들리고 있다. 파산을 고려해야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나쁘다.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먹고 살고는 있지만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가족에라도 손을 벌리고 싶지만 유산을 나눠가진 동생은 매몰차게 군다. 나는 동생을 죽이고 동생의 재산을 가로채 빚을 청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때마침 이랄지, 흉흉한 때라 연이어 두 건의 묻지 마 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공교롭게도 사건이 벌어진 지역과 피해자의 이름이 알파벳 ab로 마치 소설 속 설정처럼 맞아떨어진다. 나는 이걸 이용하기로 한다. 동생이 사는 지역과 동생의 이름은 d니까, 지역과 이름이 c인 사람을 죽여서 ABC의 규칙을 가진 묻지 마 살인인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c지역의 사는 c를 죽이고 이전의 두건의 사건까지 합쳐 ABC규칙의 묻지 마 살인인 것처럼 꾸몄다. 언론은 난리가 났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안날이 난 인터넷 커뮤니티도 덩달아 시끄럽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d지역에 사는 동생을 죽이기만 하면 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상당히 몰입감이 있었다. 예상 가능한데로 전개되긴 하는데, 마지막 한 줄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반전의 반전 같은 느낌이랄까. 첫 번째 이야기고, 본격 추리물을 기대해서 어떤 트릭이 튀어나오고, 권선징악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궁금했는데 작가가 그런 부분에 딱히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이야기 같았다.

 

사내편애

 

회사의 인사관리시스템이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좌우된다는 설정의 이야기다. 회사 곳곳에는 카메라가 달려있고, 그 카메라를 통해 사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 시스템이 합리적인 기준으로 인사고과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것보다 더 공정하고 감정적인 개입이 줄어들어 합리적이긴 하지만 기계의 기준은 너무 몰인정한 부분이 있으므로 시스템에는 약간의 인간적인 부분이 가미되어 있다. 주인공은 그렇게 어느 정도 인간적인 인사관리시스템의 편애를 받고 있다.

 

설정이 아주 재미있었다.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외국의 코미디 영화가 한편 떠오르는데, 여기서는 단지 기계와 인간만의 관계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기계의 편애를 받는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 사이의 미묘한 갈등과 뜻밖의 치명적인 문제에 대해서 예상치 못한 전개가 이어진다. 편애는 받는 사람도, 받지 못하는 사람도 괴롭게 만드는 법이다. 이 이야기 역시 마지막 한 줄이 재미있다.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파티쉐를 꿈꾸는 여대생이 시체로 발견된다. 머리맡에는 케이크가 여러 개 나란히 놓여있고, 어째서인지 시체는 대파를 물고 있었다. 살해현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시체 주위로 나란히 놓인 케이크와 시체의 입에 물려진 대파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추리물이라고 하면은, 특히 본격 추리물에는 불가해한 살인현장이 등장한다. 작가는 상식적으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 어떻게, 왜 벌어졌는가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 누구도 쉽게 생각해 내지 못하는 트릭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인데, 장르적 특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과하면 스토리가 지나치게 괴랄 해진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떻게보다는 누가가 더 중요한 문제이지 않나.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면 경찰들은 일단 범인을 잡는데 집중할 것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경찰이다. 이상한 살해현장을 만나고, 정석적인 수사를 진행해 범인을 검거한다. 검거 후에 어째서 시체에 파를 물리고 케이크를 늘어놓았는지 골몰하는데, 어떤 추측을 해보긴 하지만 진실은 물론 범인만이 알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던져주고 최대한 말이 되게 이야기를 진행하고 본격 추리물처럼 마무리 지었다.

 

밤을 보는 고양이

 

밀린 휴가를 몰아서 쓰고는 시골 할머니 댁에 내려온 주인공. 할머니 댁에는 15살이나 먹은 상냥한 고양이 미코가 있다. 느긋하게 시골생활을 만끽하며 미코와 뒹굴 거리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미코가 이상하다. 밤이 되면 조용히 허공을 응시하는 것이다.

 

코지 미스터리의 정석처럼 보이는 이야기이다. 애완동물이 밤중에 허공을 응시하면 보통 귀신이니 저승사자니 하며 오컬트적인 분위기로 빠지기 쉬운데 상당히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해 나간다.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추론해 나가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이 책에 실린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설정은 가장 평범한데 전개나 결말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죽은 사건

 

태평양 전쟁 말기, 패색이 짙은 일본은 어떤 특별한 무기를 개발하여 전세를 뒤집고자 했다. 징집되어 연구시설에 배정된 나는 연구 내용은 알지도 못한 채 고치같이 생긴 이상한 기계 안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나 이외에 2명의 병사가 더 있어서, 3교대로 하루 종일 자전거 페달을 돌린다. 그런데 어느 날 병사 하나가 머리를 둔기로 가격당한 상처를 입고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다. 폐쇄된 연구소 안, 무기로 추정되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쓰러진 병사 주변으로는 으깨진 두부만이 발견 되었는데.

 

이 책의 표제작이다. 제목만 봐서는 황당한 트릭을 기발하지 않냐 며 박박 우겨댈 것 같은 이야기지만 거기서 한 번 더 비틀었다. 군에서는 순간이동장치를 개발하여 다량의 폭탄을 적국의 상공으로 이동시켜 초토화 시킨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순간이동장치의 동력이 되는 자전거 페달만 밟던 병사가 살해당한다. 마치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죽은 것처럼. 하지만 두부는 얼리더라도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 둔기가 될 수 없다며, 초반부터 얼토당토않은 가능성을 배제시킨다. 그리고 엄청난 추리가 이어지는데. 사실 대부분의 사건들은 아주 단순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 사건을 괴이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을 과장하고 확대해석하는 관계자다. 바카미스처럼 보이지만 바카미스를 마구 비웃어주고 있는 것 같은 이야기이다.

 

네코마루선배의 출장

 

사운을 좌우할 신기술이 개발되고, 나는 연구소에서 신기술 데이터를 받아오는 막중한 임무를 받고 출장을 떠난다. 보안이 철저한 연구소 안으로 들어왔더니, 이상한 인형 탈이 자꾸 어슬렁거린다. 그는 학창시절 선배이자 괴짜로 유명했던 네코마루로, 연구소의 마스코트라는 네코멜론군 탈을 쓰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왠지 모르게 네코마루 선배와 동행하게 된 나는 중요한 데이터를 받아들고 연구소를 나서려고 했지만, 안내를 해주던 실장님이 물이 든 양동이에 맞아 쓰러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연구소에 발이 묶이고 만다. 나와 네코마루 선배, 그리고 연구소 직원들이 함께 이동하다 보니 사건 현장은 교묘하게 밀실 상태였는데, 범인은 증발이라도 해버린 양 온데간데없다.

 

작가의 데뷔작에 등장한다는 캐릭터 네코마루 씨가 나오는 이야기이다. 네코마루 씨는 호기심이 가는 대로 촐랑촐랑, 태평하게 살아가는 길고양이 같은 인물로 이야기 속에서는 탐정역할을 맡는 사람이다. 작은 체구에 친근한 얼굴이지만 친한 사람에 한해서 입이 험하다. 네코마루 선배를 비롯해 나와 일행들이 사건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논박하며 사건의 진실을 추리해 낸다는 이야기다. 트릭도 그럴싸하고 가설들을 하나하나 깨부수며 진상에 다가가는 구성도 충실하고 무엇보다 캐릭터가 재미있다. 인형 탈을 쓰고 다니는 것도 웃긴데 그것마저도 제대로 맞지 않는 옷이라 인형머리가 건들건들 거리는 모습이라니. 그런 꼴을 하고는 나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지하며 독설을 퍼붓는다. 매우 독특하다.

 

역자는 이 책이 작가의 폭넓은 작품영역을 한껏 보여주는 종합선물세트 같다고 평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는 기괴한 사건을 만들어내고 트릭을 짜내는데 지나치게 골몰하는 나머지 현실감은 영 떨어지는 이야기를 내놓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책 속에서는 기발하고 그럴 듯 한 것 같지만 막상 다시 생각해보면 저게 말이 되나 싶은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뭐 그런 이야기라도 나름의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너무 그런 이야기들만 읽다보면 아무래도 좀 질리기 마련이다. 이것저것 많이 시도하고 그냥 잘 쓰는 작가가 나는 좋더라. 이 작가도 그냥 잘 쓰는 작가인 것 같다.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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