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감과 우울증은 명백히 구분되어야 하는 개념이라는 것을 깨우쳐 준 책이 기억난다. 한창 행복에 대한 담론이 유행하던 즈음 읽었던 책인데, 제목과는 다르게 행복론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었고, 임상의인 저자가 개발한 우울증 치료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였다. 운동을 하라든지, 햇볕을 쬐라든지, 잠을 잘 자야 한다든지, 다양한 사회생활에 참여하라든지 하는 내용이었는데, 뭐 이런 별거 아닌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어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당시에는 상당히 시큰둥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우울증이란 것은 저런 별거 아닌 것들조차 과제로 삼고 노력해야 되는 그런 병이라는 말이 된다. 우울감이 아닌 우울증은 그런 질병인 것이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햇볕을 덜 쫴서 그런지, 늦은 밤까지 버티다 자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지 부쩍 우울감이 심했다. 우울감이 며칠 지속되자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이정도면 우울증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왜,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느니, 세상 근심 없을 것 같은 유명인들도 앓았었다던가, 앓고 있다던가 하는 ‘그런 거’ 아닌가. 그래서 집어든 책이었다. 호기심이 반이었고, 그냥 좀 우울했다.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뭐 반전의 반전이랄까. 내가 멋대로 단정 지었고, 짧은 지식에 기댄 선입견 때문이긴 했지만, 생각했던 거랑은 많이 달랐다.
우선은 우울증 투병기로 알고 읽었기 때문에, 글이 좀 감정적이라든지, 자기연민에 빠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대단한 착각이었다. 어떤 신문의 체험수긴줄 알았다. 어떤 부분에서는 사회고발기사 같기도 했고, 정보지의 친절한 안내문 같기도 했다. 알고 보니 작가가 기자였다.
논픽션이 아닌 매체에서 다뤄지는 우울증은 단편적이고 정형적이다. 예민하고, 히스테릭하며, 무기력한, 그야말로 보여지는 우울증의 면면이다. 작가는 우울증 증상이 발현하고, 진행되고,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고, 진료를 받고, 심리 상담을 받는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세세하게 전달한다. 본인의 케이스뿐만 아니라 다른 환우들의 다양한 사례를 더했고, 만성질환인 우울증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도 진솔하게 전한다.
어떤 것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안에서 보이는 모습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 수 있지만, 안의 모습을 제대로 말해 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좀 독특하고 특별하다.
우울증을 F코드 질병이라고 감추고 쉬쉬할 일도 아니지만, 요즘의 세태처럼 가볍게 여길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마음의 감기라고들 하는데, 감기는 심하게 앓을 지언정 약을 안 먹어도 낫지만 우울증은 반드시 적절힌 치료가 필요하다.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이 과연 적절한 별칭이 될 수 있나 다시 생각하게 됐다.
살아가면서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참 힘들고, 그럴 기회를 얻기조차 쉽지 않다는 걸 종종 느낀다. 누군가는 안고 있을지도 모를 문제를 왜곡 없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가볍게 읽히지만 무거운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