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남아메리카 가이아나의 어느 종교 공동체에서 900명이 넘는 교인들이 집단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그 이름도 유명한 존스 타운 집단 자살 사건이다. 912명의 교인이 음독자살했고, 이 가운데 어린이가 276명이나 되었으며, 교인 가족들의 의뢰로 조사차 공동체를 방문한 조사단도 6명이 목숨을 잃었다. 『명탐정의 제물』은 이 충격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사이비 공동체에서 일어난 불가해한 밀실 살인사건
탐정의 존재가 인정되고, 업적에 따라서는 명성도 얻어 반 연예인처럼 여겨지는 가상의 일본에서 주인공인 오토야 다카시는 명탐정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애매한 탐정이다. 수사에 자문으로 불려 나갈 정도의 인정은 받고 있지마는 사건 해결에 있어서는 본인보다 더 뛰어난 대학생 조수 리리코에게 한 방 먹기 일쑤다. 그런 리리코도 사이비종교와 투자사기가 결합한 사건의 피해자였다.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오토야의 조수가 된 리리코는 오토야와 함께 많은 사건을 해결한다.
대학에서의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리리코가 돌연 소식이 끊기자 오토야는 리리코를 조사하고, 리리코가 연수가 아니라 재력가 찰스 클라크의 의뢰를 받아 사이비 공동체 조든 타운에 조사차 나갔다가 붙잡혀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르포라이터인 친구 노기 노비루와 함께 리리코를 구출하기 위해 조든 타운으로 날아간 오토야는 리리코를 비롯한 조든 타운 조사단 일행에게 벌어진 불가해한 사건들은 연달아 맞닥뜨리고,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나간다. 는 것이 아주 대략적인 줄거리다.
추리가 수사가 될 수 없는 명백한 이유
존스 타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공포영화를 흥미롭게 본 적이 있어서 초반부터 몰입이 잘 됐다. 그냥 탐정과 명탐정의 역전된 상하관계 조합도 독특하다고 생각했고, 가독성이 정말 좋구나 싶게 전개도 빨라서 잘 읽고 있었다. 오토야가 리리코를 구하겠다고 조든 타운으로 날아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주인공인 탐정 오토야는 초반부터 상당히 허당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데에서도 어째서인지 조수인 리리코와 신경전 아닌 신경전을 벌이고, 2% 부족한 추리를 이끌어 내는가 하면 그걸 또 분해하는 상당히 친근한 모습을 보여준다. 조수를 구하겠다고 수상한 집단으로 잠입하는 행동력을 보이면서도 사전 조사는 하지 않는 백치미를 보여주고, 아무리 르포라이터인 친구의 도움을 받는다지만 앞일에 전혀 대비하지 않는 쓸데없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면면이 초반에 쏟아지듯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캐릭터인지 해석이 안 돼서 난감했고, 이야기 전개에도 흥미가 확 떨어졌다. 그래서 한동안 놓고 있었다가, 그래도 이야기가 본궤도에 올라갔는데 읽어야지 싶어서 다시 집어 들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다 모인 조든 타운에서 본격적으로 사건이 발생한다. 밀실 살인사건 비슷한 것이 연달아 일어나는데, 조든 타운에 모인 조사단원들이 모두 비범한 이력을 가진 탐정들이라 다양한 추리가 제시되고 논파 된다.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으로서, 이런 부분들을 나름의 재미 포인트라고 짚어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문득 떨떠름한 기분이 되었다.
하나의 현상을 앞에 두고 다양한 설명이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아이스크림콘을 들고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가 왜 울고 있을까 추리해 본다면, 아이스크림을 누군가 뺏어 먹어서 라든지,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서 라든지, 아이스크림을 흘려서 라든지 다양한 해석을 갖다 붙일 수 있다. 실상은 아이스크림과 상관없이 그냥 우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추리가 항상 사건의 진상에 근접한다고 볼 수는 없다. 탐정에게 주어지는 것은 벌어진 사건의 결과와 몇 가지 정황들 뿐으로, 경찰의 수사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명탐정이니까 하나를 보면 열을 헤아린다는 식의 전개는 사실 애초에 설득력을 잃었다. 작가가 그런 부분을 일종의 독자 기만 장치로 활용하는데 이런 부분이 이 책의 호불호를 불러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불호였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불가해한 밀실 사건 하니 정말 좋아하고 재미있게 읽다가 짜게 식었던 어떤 책이 하나 떠오른다. 그 책에서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을 말이 되게 만들기 위해서 사전 밑 작업을 아주 치밀하게 했다. 양자역학 이론까지 끌고 와서 일장 연설을 해두고는, 사실은 이러한데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되었답니다! 라는 전개였는데, 합리적인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매우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에서도 그 비슷한 것을 시도하는데, 그 설명이 설정된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라는 식으로, 이전의 그 책과 비교해서 다소 성의가 없구나 싶었다. 다양한 추리가 세워지고, 무너지는 그야말로 추리의 향연인데 생각해보면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싶은 것도 있고 이거 저기서 봤는데? 싶은 것도 있고, 이거는 너무 억지스러운데? 싶은 것도 있다. 작가가 많은 사건에 많은 설명을 다는 데 힘을 빼서 그런지 정작 동기에 대해서는 너무 대충 넘기는 느낌이라 그 부분도 아쉬웠다. 한 가지에 꽂혀서 하나로 모든 것을 퉁치는 인상을 주면 재미있게 읽다가도 던져버리고 싶다.
명? 탐정의 제물?
전개가 정교하다기보다는 상당히 거칠다. 읽다 보면 중간, 중간 멈춰서 이건 뭐지 싶은 부분이 있는데, 그 산을 잘 넘어서 후일담까지 읽어내니 묘한 생각이 들었다. 소재가 된 사건이 워낙에 충격적이고 미스터리한 부분이 있으므로, 작가가 사실은 그 미스터리에 탐정역을 자처해서 도전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1978년 11월 18일, 남아메리카 가이아나에서는 어떻게 9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단체로 자살한 걸까? 그 많은 사람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든 교주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에 대한 작가의 추리는 이렇다. 물론 하나의 현상에는 다양한 설명이 붙을 수 있고, 추리가 항상 사건의 진상에 근접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아, 한국인 캐릭터가 나온다. 뜬금없이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