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럽게 가꾸는 작은 정원
며칠 전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새벽에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불길을 피해 탈출하는 이웃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殺傷)했다. 통상적으로 말하는 '묻지마 범죄'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
범죄 발생학 이론에 따르면 모든 범죄에는 목적이 있고 한다. 특히 중범죄에 해당하는 상해치사죄(傷害致死罪)의 경우는 거액의 금품을 갈취하거나 치정에 의한 복수 따위가 목적인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무목적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적 원인이든 사회적 원인이든,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묻지마 범죄'가 자주 발생한다. 그때마다 언론은 국민들의 분노를 보도하고 범죄를 예방하지 못한 당국의 대응 태도를 비판한다. 이들 범죄자들이 어릴 때부터 사랑받으며 평화로운 환경에서 자랐다면 그토록 흉악한 일을 저지르는 인간으로 변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성장환경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박원순의 『식물의 위로』는 '매일 조금씩 마음이 자라는 반려식물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반려식물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일곱 가지 위로를 묶었다. 오랜 친구가 그리운 사람, 소소한 행복을 즐기고픈 사람, 마음의 안정이 필요한 사람,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 사람, 부담 없는 친구가 필요한 사람, 자존감을 높이고 싶은 사람, 혼자 외롭게 지내는 사람이 그 위로의 대상이다.
초록 잎이 가득한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초록색은 눈을 쉬게 해주고, 식물들이 내뿜는 숨이 나의 숨을 깨끗하게 해준다. 위, 아래, 좌, 우로 원근감을 주는 다양한 자연의 오브제를 쫓아 눈은 자연스럽게 이완 운동을 시작한다. 귀는 부엽을 밟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 잎들 사이로 부딪치는 바람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 따위를 모두 흡수해 마음을 정화시킨다. 초록 나무들로 애워싸인 느낌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준다. 한참 숲속을 걷다 보면 피로가 어느새 사라지고 두려움과 불확실성의 죽은 껍데기들이 모두 떨어져 나간다. (85~86)
몬스테라 같은 커다란 초록잎을 바라볼 때 느끼는 것은 안정감이다. 몬스테라는 위로감과 함께 평온함을 주는 식물이다. 비록 열대의 숲속처럼 울창하지는 않더라도 몬스테라가 자라고 있는 공간에 들어서면 그 공간이 자연의 일부로 느껴진다. 두려움과 걱정이 많을 때, 우울하거나 머리가 아플 때 몬스테라가 자라는 공간에 멍하니 앉아 심호흡을 해본다. 그러면 때묻지 않은 원시림의 맑은 에너지가 폐부로 깊숙이 스며든다. (91)
우리 사회는 지금 '치유'를 말하고 있다. 참사와 범죄로 인해 가족이 희생되어 고통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과, 사회에서 소외되어 사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그야말로 '묻지마 치유(?)'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저자는 『식물의 위로』에서 위로와 치유를 거창하게 외치지 않는다. 은근하게 슬며시 자기를 드러내는 반려식물처럼, 사랑과 정성으로 식물을 돌보는 과정에서 자신도 어느듯 귀하고 평화로운 사람이 되어 있고, 누군가에게 반려인이 되어 있다고 속삭여 준다.
찰스는 식물을 끔찍히 사랑하는 남자다. 그는 자기 집 정원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투어를 시켜 주면서 식물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것을 좋아했다. 여름이 시작되던 어느 날, 그의 정원을 방문했다. 그 정원은 작은 식물원 같았다. 집 앞 정원뿐 아니라 뒤쪽으로 돌아가면 비밀의 정원처럼 작은 숲길이 있고 시냇물도 흘렀다. 집을 지을 때 모종으로 심었던 동백나무는 이제 제법 자라 겨울을 거뜬히 나고 있다면서 자랑스러워했다.
식물을 기르고 정원을 가꾸는 일은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픈 자랑이다. (185~186)
작지만 정성스럽게 정원을 가꾸어 이웃과 벗들과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이 곧, 스스로에게 위로와 치유이고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에게도 위로이고 치유이지 않겠는가.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