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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렘 입숨의 책

[도서] 로렘 입숨의 책

구병모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구병모 작가의 소설을 좋아해서 신간이 나오면 매번 챙겨보는 편이다. 이번 책은 미니픽션이라고 해서 200자 원고지 50매 내외의 짧은 이야기들만 담겨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작가 인터뷰를 찾아 보았는데 '원고의 분량은 줄어도, 원고를 쓰는데 품이 더 적게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총 13개의 이야기인데 소재가 모두 흥미롭다. 읽으면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들은 '화장의 도시', '영 원의 꿈', '동사를 가질 권리', '궁서와 하멜른의 남자', '세상에 태어난 말들', '시간의 벽감' 이렇게 였다. 

제목에 있는 '로렘 입숨(Lorem Ipsum)'은 디자인 작업 등에 사용하는 의미가 없는 글자를 말한다. '이곳에 내용을 채워 주세요.'같은 의미로 사용되긴 하지만, 글자 그 자체에는 아무런 뜻도 없는 말이다. '동사를 가질 권리'에 이 내용이 등장하는데, 이야기 끝의 작가 노트를 보면 '이어 붙였을 때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소설을 오래도록 간절히 쓰고 싶었다'라고 나온다. 

'이야기 자체에 대한 의문을 이야기로서 드러내고 있다. 소설에 이야기가 꼭 있어야 한다고, 심지어 선명하고 강력한 주제의식 마저 있어야 한다고 누가 결정했을까?' 

이 부분의 작가 노트를 읽고 나면, 책의 제목이 왜 로렘 입숨의 책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미니 픽션이라는 아주 제한적이고 한정된 공간 속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도. 짧은 분량 속에도 시작과 끝이 분명하게 있고, 각각의 이야기들을 통해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이야기인 '시간의 벽감'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기가 달려가는 종착지에 멸망이 입을 벌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모두가 필멸의 존재라는 사실을 위안을 삼고 모른 척한다는 것을요. 그러니 나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앞으로도 내내 무언가를 발전시키고 크게 키우며 자신들이 만들어낸 굉음에 파묻혀 죽어갈 때까지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인류가 내내 반복해온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정말로 머지 않은 미래에 '시간의 벽감'처럼 추위와 절망만 가득하다고 해도, 우리는 멈출 생각이 없고 정해진 끝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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