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표지를 보고도 예상할 수 있듯이 호러, SF 소설이다. 총 8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각 단편은 모두 지극히 평범한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어느날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체 불명의 재난이 발생하며 뒤집히고 비틀리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던 사회의 규칙, 도덕은 모두 사라지고 인간의 밑바닥에 있는 것들을 꺼내 보여준다.
'반짝이는 것'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아들 부부는 안락사 비용이 아까워 감염된 아버지를 내다 버린다. '이름 먹는 괴물'의 아이들은 힘을 합쳐서 괴물에게서 벗어나기 보다는 상대의 이름을 불러 괴물에게 바치는 편을 택한다. '목소리'에는 정체 모를 목소리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등장 인물들은 살기 위해서 타인을, 심지어 가족이라도 죽여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목소리'에서는 살고 싶은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화면 공포증'은 현대인의 특성을 그대로 공포로 전환시켰다. 눈을 떠서 잠이 들때까지 하루종일 쳐다보게 되는 화면들. 휴대폰, PC, 전광판 등. 이 모든 것들이 공포의 대상이 된다. 쳐다보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미 우리 주위에 너무나도 촘촘하게 퍼져있어서 피할수가 없다. 결국 화면을 볼 수 없도록 스스로의 눈을 찌르거나, 화면 너머 다른 세상을 향해 뛰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화면 공포증'을 읽을때 가장 오싹했는데, 책을 읽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화면을 피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리뷰를 쓰기 위해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마지막 단편인 '부디 너희 세상에도'에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소설 속의 소설이 나온다. 평소와는 조금씩 다른 주변을 보면서 주인공은 의문을 갖다가 점차 이곳이 소설 속임을 깨닫는다. 초반에는 주인공 버프를 받아 좀비를 물리쳐 나가지만, 악랄한 작가는 해피엔딩을 원하지 않는다. 수많은 좀비에게 둘러쌓여 죽기 직전, 주인공은 깜빡이는 커서를 발견한다. 살아 남고 싶은 마음과 이 모든 원흉인 작가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그녀를 활자 너머로 이동시킨다. 마치 괴물이 자신의 창조주인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복수를 하듯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그녀는 자신을 창조한 작가의 발목을 물어뜯고 만족한 채 눈을 감는다.
몇몇 소재 자체는 다른 호러, SF 소설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것들이 보였지만, 작가만의 색이 아주 짙어서 특색있는 글이 되었다. 남유하 작가를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현실적인 공포를 잘 구현해내는 것 같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다이웰 주식회사'도 읽어봐야겠다. 호러 소설을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