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최근 읽은 책들이 단편으로 구성된 호러 또는 판타지 소설들이다. 구병모 작가의 '로렘 입숨의 책', 남유하 작가의 '부디 너희 세상에도'. 그리고 이번에는 '저주토끼'이다. 비슷한 장르로 구분되지만, 작가들의 스타일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의 글이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이 책의 매력은 읽고나서 찝찝한 기분이 남는 것과 기괴함이다.
총 10개의 단편이 실려있고, 대부분 이상하고 찝찝한 느낌의 소설이다. 호불호가 갈릴수도 있는 내용이라, 만약 이런 종류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저주토끼', '안녕, 내 사랑',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를 먼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책을 읽고나서 정보라 작가에 대해 찾아보니 실제로 폴란드에서 유학한적이 있었고, 전공 중 하나가 러시아 문학이다. 작가의 배경이 각 주인공에게 녹아있는 점도 재미있었다. 정보라 작가의 '호'도 읽어보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분노와 슬픔과 원한이 넘치는 세상에서 타인에게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 저주토끼
'인공 반려자는 2년이나 3년, 길어도 4년이 지나면 폐기됩니다. 아직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혹은 부품 몇 개만, 소프트웨어 몇 가지만 업그레이드해주면 10년은 더 쓸 수 있는데, 단지 새로운 기종이 나왔다는 이유로 쓰레기 취급을 받습니다. 그 새로운 기종도 결국 2, 3년이 지나면 또 쓰레기가 되고 말입니다.' - 안녕, 내 사랑
내 부모가 자식의 삶을 파괴하고 미래를 갉아먹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무리하게 확장시키려고 애쓰는 것도 이러한 강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키워줬으니 감사하라는 말 앞에는 '죽이거나 죽게 내버려두지 않고'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 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