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과 표지를 보고 처음에는 SF 소설인 줄 알았다. 이 소설의 배경은 오키나와로 이곳에 살고 있는 미나코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역사와 기록과 관련된 내용이 큰 주제이고, 독특한 퀴즈와 말도 등장한다.
미나코의 일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요리 씨가 만든 오키나와 도서 자료관에서 자료들을 정리하는 것. 또 하나는 알 수 없는 스튜디오에 가서 세상 각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퀴즈를 내는 것이다. 자료관과 스튜디오 모두 사람들이 반기지는 않는 장소라서 미나코는 보통과는 조금 동떨어진 생활을 이어간다.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을 번역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내용이 있는데, 독자 입장에서도 이 책은 완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책이었다. 그래서 약간의 해석이 곁들여진 '옮긴이의 말'이 아주 소중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부분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중후반부까지도 이 책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 갑자기 나타난 말, 미나코가 퀴즈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는 의문의 사람들. 요리 씨의 오래된 자료관. 이것들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완전히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일본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없어서,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해도 잘 몰랐고 류큐 왕국이 있었던 것도 처음 알았다. 이런 부분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이 책을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될 것 같다.
외부의 흐름으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었던 오키나와, 그리고 그 모든 기록을 모아둔 요리 씨의 자료관. 갑자기 나타난 말 또한 옛 오키나와의 토종 말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미나코는 오키나와의 기록을 간직하고 있는 계승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 기록이 언젠가는 필요해 질 것이라 믿고 있어서 자료를 보관하는 일을 하지만, 막상 기록이 필요해지는 때는 오지 않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미나코는 기록을 꾸준히 추가한다.
태풍이든 폭탄이든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마을을 이전 모습으로 되돌리려면 아주 작은 단서라도 놓쳐선 안된다. 태풍을 겪은 사람들은 정신적 쇼크로 인해 미세한 부분가지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을에 대한 정보들이 손실되거나, 애초에 기록조차 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럴 때면 노스텔지어라는 보정을 거친 기억을 통해 원래의 상태와 유사하게 복원한다. 이 섬의 문화와 풍경은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 p.60
앞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런데 무언가 돌발적인, 무시무시한 폭탄과 폭풍으로, 아주 슬픈 일로 풍경이 확 바뀌어 버렸거나, 모두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 원래의 모습조차 잊어버렸을 때, 이 정보가 중요한 지침이 되어 줄 것이다. 모든 것이 남김없이 사라져 버렸을 때 이 자료가 그러한 곤란한 사태로부터 구해줄 거라고 미나코는 굳게 믿었다. - p.153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