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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도서]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처음에 제목을 봤을 때는 눈의 방향을 뜻하는 시선(視線)을 말하는 줄 알았다. 등장인물의 이름인 심시선에서 따온 제목이었지만. 그러고보면 정세랑 작가는 인물의 이름으로 제목을 짓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보건교사 안은영', '지구에서 한아뿐' 등의 책들 같이.

첫 장을 펼치면 심시선 가계도가 펼쳐진다. "시선으로부터" 뻗어나온 인물들이 한 장에 모여 소개된다. 꽤나 복잡한 가족 관계라고 볼 수 있지만 이들 모두 '시선'을 중심으로 뭉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두 가족 그리고 3대에 걸쳐 시선과 시간을 공유하고 추억을 만든 그들이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이야기는 하와이에 가서 제사를 지내자는 큰 딸 명혜의 발언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동안 제사를 지내지도 않았거니와, 저 먼 하와이땅까지 가서 제사를 지내자는 말에 가족들은 당황한다. 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십주기를 기념하기 위해서 가족들은 어린 시선의 터전이었고, 그녀의 정신과 의지가 만들어졌던 하와이로 모두 모인다. 그곳에서 시선의 제사상에 올릴 물건을 찾기 위해 각자 시선과의 추억을 곱씹는다. 

등장인물들이 꽤 많은데도 불구하고 각각의 성격이 잘 드러나있다. 특히 하와이에 도착한 이후 개별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 그들이 어떻게 각자의 어려움을 대처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누군가의 고통은 직접 부딪히고 여러번 깨지면서 극복하는 것이며, 어떤 고통은 깊이 가라앉아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시선의 가족들은 조금 유난스럽고 활발하긴 하지만 그래도 상대의 고통을 존중할 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무척 따뜻하다.

책의 제목이자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심시선 여사에 대해 얘기하자면, 그녀는 이제 그녀가 남긴 글, 그리고 누군가의 추억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나 오히려 실체가 없는 심시선이 이 책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쫓기듯이 도착한 하와이, 마티아스 마우어와의 만남, 폭력으로부터의 도망, 두번의 결혼. 어느 것 하나 순탄하지 않아 보이는 사건들 속에서도 그녀는 발 딛은 땅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가지를 뻗는다.

그리고 그녀로 부터 뻗어나온 가지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근원인 시선을 추억하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그녀로부터 받은 정신적 유산들에 대해 감사해하고 잊지 않는다. 그러니 앞으로 시선의 가지들에게 세찬 바람이 불거나 따가운 햇빛이 찾아와도 그들은 시선처럼 잘 살아낼 것이다.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 p.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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