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상흔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우리사회에서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거나 틀리다거나 하는 논쟁은 이제 의미가 없어져버린것 같다. 이념논쟁으로 흑백논리가 지배하던 시기도 벗어나고 서로가 틀림보다는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지나간 과거를 그냥 묻어두기에는 가슴 아리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소설의 화자를 어린 소녀로 선택한 까닭도 아무런 편견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저자의 의도가 숨겨진 것은 아닐까?
전란이 일어나면서 불분명한 미래를 꿈꾸면서 주변의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과정의 연속이지만, 화자의 집에서 가족과 같이 키우던 암소는 화자의 피란을 도운후에 그 어떤 위험도 불사하고 자신의 새끼를 찾아서 달려가는 모습에서 묘한 대비를 이룬다. 현재의 소중한 것에 최선을 다하는 동물과 불투명한 미래에 현실을 배척하고 있는 우리 인간의 삶을 서로 대치시키고 있다. 책의 표지에서 인간과 마주보는 소와 더불어 둘 사이에 누구나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짧은 거리이지만 자동차가 지나간 듯한 그 길은 둘 사이를 영원의 거리로 갈라놓은듯한 느낌이다.
남과 북의 거리로, 남과 녀의 거리로, 진보와 보수의 거리로... 그 무엇으로도 이야기를 이어갈수 있겠지만 그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라 살아가는 현실에서 너무나 가까이 있지만 이렇게 서로를 다르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이 책은 전후의 피폐한 환경에서 생존해나가는 수많은 민초들의 삶을 이렇게 그려내고 있다. 누가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상관없이 그 간극이 벌어지게 된 이면을 살펴 봐야 한다고 외쳐대는것 같다.
상대의 입자에서 세상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다면 이처럼 선명한 간극은 생기지 않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