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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철학자

[도서] 행복한 철학자

우애령 저/엄유진 그림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행복한 철학자.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책표지가 재미나게 생겼어도 마찬가지다. 철학이라는 것이 보통 낱말인가. 고민을 하거나, 현학적인 말을 하거나, 궤변을 늘어놓으면 철학하고 있네,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만큼 어렵고 어렵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비교해도 알 수 있다. 철학책을 읽는 것은 다른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한 페이지를 읽는 데에 최소한 다른 책의 다섯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며, 최대한 이해불가의 딱지를 달고 영원함으로 빠져들게 된다. 뒷장을 읽으면서 앞장을 뒤적거리게 만들고 읽은 문장을 몇 번 되풀이 읽게 만드는 것이 철학책이다. 또한 문장을 인수분해하면 분명 아는 단어인데 철학자의 언어로 조합되는 순간 고대 상형문자의 색깔을 띠면서 저만치 물러앉는 것이다. 그런데 행복한 철학자라니. 공개적으로 철학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면 인생의 대부분을 철학으로 보낸 것이 분명할 진대 행복한, 이라는 형용사까지 달고 나왔으니 믿어지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책장을 열었을 때, 프롤로그 첫 줄은 이랬다. ‘행복한 철학자’라는 제목은 역설적일 수 있다.

나는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의 내용은 철학자의 사는 이야기이다. 삶이 아니라 사는 이야기라고 굳이 말하고 싶은 이유는 삶이란 단어가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내포한 것이라면 사는 이야기라면 형이하학적인 의미를 내포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행간의 의미를 알기 위해 끙끙거릴 책이 아니라 문장 그 자체로 즉시 읽히고, 이해되고, 공감되는 이야기다. 철학자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함께 세상을 산다. 말하자면 철학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철학을 하는 이야기다. 철학이 주가 아니라 사는 이야기 중간 중간 틈틈이 철학이 박힌 이야기다. 그래서 결혼 프러포즈를 ‘개체는 다르되 이미 타자가 아니다’라는 말로 대신했다는 말에서 풋 웃음이 터져 나오고, 어린애와 버금가게 어깃장을 부리고, 떼를 쓰며 거기에 합당한 철학적인 이유를 달고 철학적 사유를 하는 철학자에게 애정이 느껴진다. 가끔은 그런 철학자 때문에 철학이 이웃 사람처럼 가까워진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사는 재미는 즐거움에서 온다. 독서가 취미라는 사람이 많은 것도 책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 많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즐겁지 않으면 요새 애들 말로 ‘따’를 당하게 된다. 이 책은 내게 ‘따’를 당하지 않았다. 첫 페이지부터 즐겁게 해주어서 애인처럼 가까이 두었다.

책은 다 읽히기도 전에 다른 주인을 향해 떠났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한 친구한테 병문안 가는데 가지고 갈 만한 것이 뭐냐고 물었고 나는 마음이 급해 읽던 책을 남편에게 주었다. 입원한 사람이 병의 결과를 앞두고 얼마나 긴장하며 그것에 반비례해 늘어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 사람에게 애인처럼 살갑게 굴면서 즐겁게 해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이 책은 정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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