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빅터는 나치의 포로수용소에서 부모, 형, 아내를 잃고 그 자신도 여러 수용소를 떠돌다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책은 이런 이력의 그가 고향으로 돌아와 강연한 내용 중 3편을 묶은 책이다.
참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불과 1년 전까지 나치의 포로수용소에서 죽음이 예비된 사람이 이렇듯 젊은이에게 강연을 할 수 있을까. 전쟁 후 생활을 위한 생존이었나, 아니라면 책 속의 그의 말처럼 전쟁을 겪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삶의 의지를 주고픈 각오였나. '외상후 스트레스'는 없었을까. 설마 없기나 했을까. 다만 신경정신과 의사였던 그였기에 수용소에서도, 돌아왔어도 견디었다 생각한다. 실제 수용소 생활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가스실로 보내지지 않기 위해, 건강한 포로로 보이도록 관리했다한다. 다리를 절거나 무엇에 의하건 약해 보이면 선별되어 가스실로 보내지는..... 죽음 외엔 없었던 그곳에서 저자는 살아남았고 겪은 자로서 겪었거나 겪으며 내일을 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의 지금껏 삶은 그 나름의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났고 이기고 지나오는 과정이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그것들은 당시는 자신을 힘들게 했었을 것이다. 그 고통의 실체를 꿰뚫고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그 시기를 넘겼을 것이고 아니라면 고통이 준 치명적인 상처에 아파하고 상처가 드러난 생활을 하게 된다. 삶은 의무요 인생은 책임이다.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는 우리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기대를 하는 것. 삶이 주는 고통이 유의미한 고통이 되어야 하고 그 고통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것과 무한한 것이 끊임없이 만나는 삶.
'좌절' '힘들다 '모른다' '관심 없다' '내 알 바 아니다' 는 수용소 같은 인생이요 삶이다. 책임은 끌려도 가겠지만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내 삶에 '예'라고 책임지고 '왜'라고 벗어나는 것. 나만의 미래에 '예'라고 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미래에 '왜'라고 질문하는 것. 빅터는 내게 이것을 가르쳤다.
그럼에도 영광스러운 것, 미래, 곧 나만의 미래와 나를 둘러싼 일과 사람들의 미래가 매 순간 나의 선택에 달렸다는 걸 아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나는 내가 내린 선택으로 실현한 것, '행동한' 것을 현실 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1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