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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장수양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장수양 저
문학동네 | 2021년 03월

 

 

 

 산세베리아 화분을 신으로 섬기는 모임이 있었다. 사만도 그중 하나였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 사만은 산세베리아 화분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만은 상인이었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면서 가치 있는 일이었다.

 

 모임 사람들은 커다란 산세베리아 화분을 그들이 드나드는 숙소 한가운데 두고 바라보았다. 시간도 의식도 정해진 것도 없었다. 다만 산세베리아를 괴롭히면 안 되었다. 자칫하다 산세베리아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사만은 산세베리아 화분에 가까이 다가갔다. 접촉하지는 않았다. 미끈한 잎을 들여다보며 있을 수 있을 만큼 그 자리에 있었다. 색과 냄새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미묘하게 알라차릴 수 있었다. 사만은 자주 이런 상태로 산세베리아를 살폈다. 어느 날 다른 산세베리아로 바뀌어도 자신만은 알아차릴 수 있길 바랐다. 그는 모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이었고 산세베리아는 그가 있는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고가 벽에 기대앉아 커피를 마시며 산세베리아 화분을 응시하고 있었다. 긴 머리카락을 색 입힌 집게로 아무렇게나 넘긴 상태였다. 이고의 부모는 처음부터 이 모임에 있었다. 상주하며 산세베리아 화분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사만은 그들을 잘 몰랐다.

 

 ─커피 마실래요? 제가 조금 마셨지만.

 ─좋아요.

 

 사만은 이고에게 커피가 든 머그잔을 받았다. 이고는 커피에 설탕을 넣지 않았다. 사만은 커피를 달게 마시는 것을 좋아했지만 산세베리아 화분 앞에서 이고가 주는 커피에는 각별한 정취가 있었다. 사만은 머그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절반 이상 남아 있는 커피가 찰랑 거렸다.

 

 ─언제나 아주 조금만 드시네요.

 ─그저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예요.

 ─그렇군요.

 

 산세베리아 화분은 늘 1층 넓은 방에 놓여 있었다. 모임에 오는 사람들이 바로 볼 수 있도록 문을 늘 열어두었다. 그곳으로 시원한 바람은 들어왔다.

 

 ─난 엄마아빠가 이 모임에 있는 게 좋지만, 한 가지 의아한 게 있어요. 다른 곳과 달리 왜 우리 신은 살아 있는 걸까요.

 

 이고가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사만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찼다. 그는 화분에서 눈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만은 티나지 않게 이고 얼굴을 살폈다. 이고 얼굴은 사만의 힘 없는 동의에 실망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언젠가 이 산세베리아가 사라진다면 견딜 수 없을 거예요.

 ─저도 그래요.

 

 사만은 마른세수를 했다. 손바닥이 지나간 자리에 아직 건강해 보이는 그들 신이 있었다.

 

 ─그때는, 같이 죽어요.

 

 이고가 말했다. 사만은 커피로 입안을 축였다. 미지근한 온도와 쓴 맛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작은 목소리였지만 이고는 만족한 듯 보였다. 반쯤 열어둔 창문 커튼이 부풀었다.

 

 이고는 머리카락을 올린 집게를 빼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곳에는 이고가 심심할 때마다 볼 수 있는 책과 곧잘 만지작 거리는 나무 블록이 있었다. 젠가를 하면 좋겠지만 블록은 하나뿐이었다. 가끔 산세베리아가 젠가를 올려주는 장면을 떠올리곤 했는데, 이고의 상상속에서 게임 끝무렵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젠가가 아니라 산세베리아였다.

 

 이고는 벽에서 등을 떼고, 무릎으로 걸어 화분 앞까지 갔다. 그는 키가 작았다. 일어서면 지금 산세베리아와 꼭 같았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이고에게 대단히 기쁜 일이었다. 이고는 일어나지 않고 무릎을 꿇은 채 도기로 만든 화분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산세베리아 잎에는 전혀 닿지 않았다.

 

 ─네가 좋다.

 

 이고가 말했다. 사만은 머그잔을 들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속으로 ‘만일 그때가 온다고 하더라도 이고를 죽게 하진 않을 거야. 나는 잘 모르겠지만’ 하고 생각했다. 아무도 들은 이는 없었고 산세베리아도 고요했다.

 

-<친구는 다치지 않으리>, 30쪽~34쪽

 

 

 

       
 

 

 

 참 긴 시다. 타이핑 하는 것도 시간이 걸려서 이제야 올린다. 여기에는 이것보다 더 긴 시도 있다. 산세베리아를 섬기는 모임이라니, 실제 그런 거 있을까. 이거 보니 일본 소설에 나온 도자기(항아리였나)를 섬기는 게 생각났다(이야기가 길게 나오지는 않고 그런 게 있다는 게 짧게 나왔다). 그러니 식물인 산세베리아를 섬기는 사람이 아주 없다고 할 수 없을지도. 신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 그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신은 죽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산세베리아를 살았다고 하는 걸 보니. 산세베리아는 공기를 정화해준다고 한다. 그런 걸 좋게 여긴 건 아닐까.

 

 사만과 이고는 그곳에서 만났다. 사만과 이고는 사람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도 잘 몰라서. 그래도 마지막은 좋구나. 사만은 이고를 죽게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사만이든 이고든 다 죽지 않기를.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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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책찾사

    마치 소설 같은데 시였네요. 저도 집에서 몇 안되는 기르는 식물 중에서 산세베리아가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어요. 화자가 산세베리아를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부분은 그래서 공감할 수 있었구요.
    산세베리아는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잘 자라더라구요. 마치 날마다 물을 머금은 것 같은 윤기있는 그 모습이 저는 참 좋더라구요. ^^

    2021.06.22 10:49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ne518


      이 시를 보고 길에서 산세베리아 보고 산세베리아다 했습니다 책찾사 님 집에는 산세베리아가 있군요 식물을 기르는 것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듯합니다 종교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거기는 하네요 거기에 아주 많이 빠지면 안 되겠지만...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괜찮군요 그래도 저는 잘 못 키울 것 같네요 공기도 정화해줘서 많은 사람이 이걸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희선

      2021.06.23 01:53
  • 파워블로그 나난

    저렇게 긴 이야기가 시라구요? 정말 긴데요. 전 소설인가 하는 마음으로 계속 읽었답니다. 산세베리아를 신으로 섬기는 모임이라. 전 산세베리아를 죽여 본 적 있어서 저 모임에는 못 들어갈 것 같습니다.

    2021.06.22 13:25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ne518


      가끔 소설 같은 시도 있더군요 그런 것도 나름 괜찮은 듯합니다 산세베리아를 죽게 하다니... 저도 식물 같은 거 잘 못 길러요 길러야지 하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지만, 그런 거 잘 돌보고 죽어가는 것도 살리는 사람 부럽습니다


      희선

      2021.06.23 01:55
  • 스타블로거 Joy

    산세베리아 화분을 신으로 섬기는 모임이라니, 어떤 마음일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산세베리아가 죽으면 같이 죽겠다니..이런...글을 읽다가 조금 걱정스러워졌습니다. 그리고 저도 희선님처럼 그 둘이 죽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2021.06.22 21:18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ne518


      산세베리아가 신이면 마음이 편안할지... 사람은 어찌할 수 없을 때는 무엇에든 빌고 싶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산세베리아가 된 건지... 산세베리아 안 죽어야 할 텐데 싶습니다 거기 있는 사람이 잘 돌보겠지요 신이라 여긴다니... 저도 두 사람이 죽지 않기를 바랍니다


      희선

      2021.06.23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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