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장수양
어제는 해가 뜨지 않았다
네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언니가 말했다
기쁘지는 않았다
내 소원은 항상 차선책이었다
우리는 이 신기한 일에 대하여 일기를 쓴다
나는 문장을 쓰고 언니는 그것을 소리내지 않고 읽는다 말하면 사라지는 문장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늘은 힘든 일이 많았고
여전히
물과 잠은 달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나는 안전하다
배고파, 추워 같은 말을 무심코 하기는 싫어
사랑해, 좋아 같은 말은
죽어도 입에 안 익지
우리도 안다
매일매일은 사랑할 수 없지
눈을 뜨면 더 이상 눈뜨지 않아도 된다
부리 없는 새처럼 언니가 조용히 말한다
밤을 보내고 나면
많은 것을 잊어버리지만
내가 밤이 되면
밤에 일어나는 일들을 소유할 수 있어
새는 새의 영역에서 죽거나 살지
검은 눈꺼풀을 바라보며 나는 쓴다
몸에 일어나는 보풀을 만져본 적이 있다
전혀 부드럽지도 않고
질 나쁜 카펫 같았다
슬픈 감각을 학습할 때
만져보면 좋겠어
나는 두번째
언니는 나의 두번째
우리는 위험한 처음으로부터 안전하다
우리는 소원 살해 피의자다
어느 쪽도 범인이 되지 않는다
언니에게 보내고 싶은 사랑은
어젯밤 사랑이고
언니를 미워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비밀이 된 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한번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하지만
어느 쪽도 방법을 모른다
해가 뜨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흰색과 검은색을 모두 공간이라고 했다
우리는 어디든지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언니는 언니가 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언니의 밤>, 113쪽~115쪽
‘어제는 해가 뜨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걸 보면 오늘은 해가 뜬 걸까. 그게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제도 오늘도 해가 뜨지 않아 밤같은 날일지도. 낮엔 여러 가지가 잘 보인다. 정말 그럴까. 낮이어도 보고 싶은 건 잘 보이고 보기 싫은 건 보이지 않겠다.
어떤 말은 그런가 보다 하고, 어떤 말은 뭘까 했다. 바람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기쁘지 않았다 하다니.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게 아니어설지도. 아니 바라는 일이 이루어져도 기분이 아주 좋지 않을지도. 그건 잠시일 뿐이니 말이다. 그 잠시가 찾아오는 것도 다행이겠지만. 이랬다 저랬다 하다니.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