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택의 시들은 참으로 독특하다. 그의 시적 대상들은 큰 것, 잘 알려진 것, 예쁜 것, 화려한 것들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그의 눈은 차원이 다른 공간을 바라보려 꿈꾸는 과학자처럼 밝은 대낮에 어둠을 보고, 뱃속의 태아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정갈한 침대 밑에 숨어 있는 먼지 덩어리를 찾아내고, 식탁 위에 올려진 먹음직스러운 갈비요리에서 소·돼지의 숨넘어가는 비명 소리를 듣는다. 그는 작고 가려지고 감춰지고 잊혀진 것들, 있으되 없는 듯 취급 받고 무심하게 버려진 것들, 빛을 잃고 떠도는 어두운 것들에 천착한다.
김기택의 첫 시집『태아의 잠』에 펼쳐진 상상력의 길은 '인간적인 것'으로만 머무르기 쉬운 시적 상상력의 범위를 인간 아닌 것으로, 보다 넓은 곳으로 확대시켜놓았다. 소, 돼지에게도, 바퀴벌레와 송충이에게도 삶의 욕구와 이해가 있다는 그의 사상, 그것은 단순한 휴머니즘이나 장자류의 자연친화하고는 거리가 먼, 참으로 신선한 김기택만의 것이었다. 두번째 시집『바늘구멍 속의 폭풍』에 이르러 그의 작은 것에 대한 천착은 절정에 이르른다.『바늘구멍 속의 폭풍』은 뿌연 시집이다. 시집을 펼치는 순간 시집 구석구석에서 뿌옇게 날아오르는 먼지들. 공중에 떠다니는, 걸레로 닦아야 하는 쓰레기로서의 먼지가 아니라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떠나 살 수 없는 먼지의 세계. 생명 알갱이들. 시집을 따라서 먼지와 함께 햇살 쏟아지는 창가에서 미친듯이 춤을 추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공기 속에 가득한 이 먼지들은 무엇인가? 한때 땅 위에 살았던 사람들과 동식물들의 풍화된 모습이 아닌가?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사랑했을지도 모를, 얘기하고 만지고, 그 눈동자만 생각해도 온몸에 열이 나고 떨렸을 어떤 아름다운 몸을 내가 지금 마시고 있지 않은가?-(김기택『태아의 잠)후기)
먼지의 세계에 대해 이토록 세심하게 관심 쏟는 시인을, 예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김기택이 참으로 신선하고 놀라웠다. 먼지의 모습이 그러하듯 김기택의 시들은 조용하다. 시들 중간중간 터져나오는 비명소리와 왁자한 웃음소리마저도 조용하다. 어쩌면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김기택의 시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없이 고요하고 한없이 조용한 가운데 휘몰아치는 폭풍. 그의 시들은 한없이 고요한 폭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