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쉽다. 어려운 얘기가 별로
없다.
그런데 유익하다. 인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약들에 대해 별로 빼놓은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다. 일화를 과하지
않게 버무렸다.
일본인 저자인 만큼 일본과 관련 짓는 경우가 많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옮긴이가 우리나라 얘기를 조금 보태어 아쉬움을 달래기도 한다.
10가지 약을 골랐다.
저자가 고른 약은 이런 것들이다.
대항해 시대에 많은 선원들을 살린 비타민 C
지금도 인류를 위협하는 말라리아에 대한 특효약인 퀴닌
마약이면서 통증을 경감시켜주어,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지난 약’이라 표현된 모르핀
의학의 진보를 가로막은 통증을 해결하여 수술을 가능하게 해준 마취제
위생의 개념을 바꾸어 수많은 사람을 살린 소독약
매독을 물리친 살바르산
최초로 세균에 효과적인 무기로 개발된 설파제
인류를 세균의 위협으로부터 구출한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약 아스피린
그리고 에이즈 치료제
이 정도면 세계사를 바꾼 약이라 할 만 한가.
약 하나로 세계사의 흐름을 뒤바꾸었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과장일지 모른다. 하지만, 괴혈병으로 쓰려져 가는 수많은 선원을 살려 대항해 시대를
가능하게 한 비타민 C가 세계사에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설파제와 페니실린를 포함한 항생제가 전쟁에서 수많은 병사들을 감염으로부터 구해낸 것으로 역사에 중대한 전환점을
만들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질병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듯이 그 질병에 대한 치료제의 개발이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 역사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약들 중 어느 하나가 없었다면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내 조상 중 어떤 이가 이 약들 중 어느 하나로 목숨을 부지하여 나까지 이르는 가계를 완성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마취제가 없어서 수술을 받지 못했거나, 항생제의
도움으로 감염으로부터 살아났거나. 나의 존재는 바로 여기의 ‘역사를
바꾼’ 약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별로 과한 얘기는 아는 듯 싶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을 강조하기도 하지만(약
없는 질환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고 그런 교훈을 주기 위한 책은 아니다. 가볍게 읽고, 몇 가지는 기억하고,
또 더 나아가면 뭔가를 깨달을 수 있으면 좋은 책이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