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 관한 교양서적이라면 이언 스튜어트라든지 김민형 등을 비롯하여 꽤 읽었다. 모두 저자들은 스스로는 재미있게 썼다고 하고, 학창 시절 이후로 수학에 흥미를 잃어버린 이들이 다시 수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이언 스튜어트는 그런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다짐과 노력이 꼭 성공했다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가장 성공했다고 한다면, 김민형 교수의 『수학이 필요한 순간』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최영기 교수의 『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는 기존의 수학 교양도서와는 분명히 다르다. 아마도 가장 말랑말랑한 수학 교양도서일 듯 싶은데, 수식을 최대한 억제한 것 외에도(그것만으로 대중을 위한 수학책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은 많은 책들이 보여준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품새가 그렇다. 수학을 얘기하지만, 거기에 결부된 사회를 얘기하고 인간을 얘기한다. 물론 그 연결이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특히 노예해방선언에 수학의 정신 부분이 그렇다), 그렇다고 전혀 엉뚱하다고도 할 수 없다. 수학이 선천적으로 존재했던 것이든, 아니면 인간이 발명한 것이든 어찌 되었든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고, 그것으로 인간의 문명이 발달해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따라서 수학을 이해하는 게 인간을 이해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최영기 교수가 수학에 대한 얘기하는 방식이 그렇다. 수학사를 정연하게 늘어놓지도 않고, 수학의 이론을 정교하게 펼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수학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간결하게 알려주고 있다. 수학이 쉽다고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어렵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감동스럽고, 아름답다고 한다.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의 전공에서 그런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수학자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는 않다. 정합성을 생명으로 하는 수학이 그 정합성이 고도로 실현되는 순간이 어찌 감동스럽지 않겠는가.
유클리드의 『원론』 얘기를 자주 한다. 아마 나도 여러 차례 읽었겠지만, 이렇게 반복적으로 거론하고 그 의미를 얘기하는 것은 거의 기억에 없다(잊었을 수도 있다). 겨우 다섯 개의 공리(postulate)를 바탕으로 465개의 명제를 증명해낸(!) 이 『원론』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소중하고도 위대한 성취, 혹은 성취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유클리드나 그를 배태해낸 그리스의 문명 자체가 그렇다고 생각했다. 제목이 그렇다. 제목이 “수학의 원론”이 아니라 그냥 “원론(elements)”다.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뜻이며, 그 의미는 그 책이 단지 하나의 학문 분야에 대한 게 아니라 모든 문명의 근본이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게 수학이라는 얘기다. 새로 알게 된 것은 양피지에 쓴 그 책에 다섯 개의 공리는 진리임으로 굳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지만 그로부터 파생되는 465개의 증명에는 모두 그림을 넣었다는 것이다. 진리는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과 그러한 진리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는 과정의 진지함을 느낄 수 있다. 아직까지 이를 몰랐다는 게 의아할 정도다. 비록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는 거의 유클리드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천 년 전 단 몇 개의 전제로부터 수많은 증명을 이루어 낸 그 세계. 인류는 그때부터 위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