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바로 과학이 현대의 교양이라는 점을 내세운다는 것이었다. 플라톤과 셰익스피어를 얘기하는 것만이 교양이 아니라, 열역학 제2법칙과 진화론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양이라는 얘기는 ‘교양’의 정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제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저자를 만났다. 바로 오후! (여태 나는 이 이름이 본명인지 필명인지 모르고 있다.)
그의 첫 번째 저서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도 재미있고, 유익했지만(마약 얘기를 다루는 책을 유익했다고 하니 오해할 지도 모르겠다), 이 책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은 그보다 한 열 배쯤 재미있고, 유익하다. 문과 출신으로서 과학에 대해 다루는 것부터 특이하지만, 이과 출신으로, 더군다나 과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에게도 수준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깊게 다루기도 했고, 아주 적절하게 유머를 섞고 있으며, 또 그러면서도 진지한 얘기를 전하고 있기도 하다(사실 문과, 이과 구분은 없어져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물론 수능 과목을 덜어내는 수순의 문이과 통합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바로 빌 브라이슨. 아니나 다를까 책 뒷 표지에 빌 브라이슨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지만, 그런 언급이 없더라도 그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책이다. 물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범위는 빌 브라이슨의 그 책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빌 브라이슨이 이미 상당히 유명한 여행 작가로서 입지를 쌓았다는 점과 동아시아 구석의 작가가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다양하고도 유명한 과학자들을 직접 만나러 다릴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빌 브라이슨의 깊이와 넓이에 다가가지 못한다는 게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참 선택과 집중을 잘 했다고 본다. 스스로 모든 과학에 정통하지도 않고, 또 그것을 잘 다룰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이 잘 알 수 있는 것을 공부했고, 또 생각해서 글로 옮겼다. 그리고 그는 과학에 대한 얘기, 즉 과학 역사만을 다루는 게 아니라 거기서 사회로 나아갔다.
질소에 대한 얘기에서 식량 문제와 함께 과학자의 책임에 대해서 나아갔고,
단위에 대한 얘기로 국제어의 미래로 나아갔고,
플라스틱 얘기를 통해 환경으로 나아갔고,
트렌스젠더 얘기로 성평등으로 나아갔고,
구(舊) 소련과 미국의 우주 개발 경쟁으로부터 과학 노동자의 처우와 현재의 우주과학의 현실로 나아갔고,
빅데이터의 어마어마한 힘을 얘기하면서 그 데이터를 생산하는 이와 소유하는 이의 괴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고,
날씨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우리가 과연 날씨를 조작해도 되는지, 그 영향의 위험성과 국가주의의 음험함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말하자면, 과학에 대해서 쓰고 있지만, 과학 자체를 이해하고 외우기 위한 게 아니라 현대 사회를 잘, 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방도로서 과학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농담’이라고 제목을 달고 있지만, 절대 이 책은 농담이 아니다. 철학 없는 과학은 위험하고, 과학 없는 철학은 무식하다.
이 책이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는 할 수 없을 지 모르지만, 여러 훌륭한 책 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누구에게든 추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