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다음에 대한 답을 해보자.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데, 정말 그럴까? 왜 그럴까?
사람들의 평균 신장이 커지고 있는 것 같은데, 진짜일까? 어느 정도일까? 그런 추세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사람들의 행복도는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 그 측정값은 정말 행복과 관련이 있는 걸까?
제조업의 몰락을 얘기하는데, 이제 제조업의 시대는 저문 것인가?
현대 세계는 어디서부터인가?
핵발전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전기 자동차가 도로를 뒤덮을 수 있을까?
항공 여행은 정말 위험한가?
‘인류세’라는 명칭은 과연 유효한가?
탄소와의 전쟁에서 우리는 승리할 수 있을까?
뭐, 어떻게든 답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냥 어림짐작이나 어디서 주워들은 단편적인 지식에 기초한 뇌피셜이 아닌 정말 근거 있는 답변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바츨라프 스밀의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는 바로 그, ‘근거 있는 답변’에 관한 방법과 예시를 보여준다.
우리가 으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잘못된 것이었으며, 숫자, 즉 통계를 들여다보면 다른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바츨라프 스밀은 통계 수치를 통해 세상을 훨씬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따라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다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거의 비슷한 생각은 한스 로슬링 등의 《팩트풀니스》에서도 볼 수 있는데, 로슬링의 작업이 우리가 사는 세계가 그냥 추측하는 것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데 조금 방점이 찍힌다면, 스밀의 작업은 세계에 대한 우려가 조금 우세하다. 그는 실업률 수치만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하고 있으며, 메가시티의 등장이 가져오는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우려한다. 미국이 왜 예외적인 국가가 아닌지를 지적하고 있으며, 브렉시트의 멍청한 결정을 비판한다. 일본, 중국, 인도의 미래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왜 핵발전이 정체 상태에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이른바 풍력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가 주된 에너지원이 될 수 없는지, 또 그것 자체가 화력연료가 필요한 상황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 밖에도 에너지에 관해서 여러 꼭지의 글을 쓰고 있는데, 그가 ‘에너지, 환경’ 분야의 사상가라는 타이틀과 밀접히 관련이 된 부분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비판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육류 소비의 증가가 환경과 식량 문제에 좋지 않은 상황을 가져온다는 것을 통계 자료를 통해 밝히면서, 육류의 종류(이를테면 닭)를 바꾸면 얼마만한 이득이 오는지를 소개한다(소고기야말로 가장 가성비가 낮고,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육류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삼중창이 왜 가장 투명하며 간단한 해결책이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가정 난방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도 제시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수치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는 애매한 것을 싫어한다면서 사실은 정말 까마득하게 애매모호한 세계에 살고 있다. 추측에 근거에서 판단하며, 근거 없는 자료를 맹신하기도 한다. 진화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에서는 그 이유를 진화적인, 경제적인 이유를 밝히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부분에서는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바츨라프 스밀은 그걸 훈련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