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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 레이

[도서] 판타 레이

민태기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우선 낯선 제목의 뜻부터.

판타 레이(Panta rhei)'.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이란다. ’만물유전(萬物流轉)‘. 비록 판타 레이란 말은 낯설지만, 흐르는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로 대학 1학년 때 배웠던(정확히는 학습했던) 명제다. 모든 사물이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책 제목은 왜 만타 레이일까? 그건 이 책의 기본 뼈대가 유체(流體)에 대한 연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흐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왔고, 그것을 어떻게 응용해 왔는지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얘기다. 흐르는 것은 물일 수도 있으며, 석유와 같은 점성이 있는 액체일 수도 있고, 공기가 될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을 넘어 자기와 전기도 되고, 지금은 폐기된 실체인 에테르일 수도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흐름이라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유체과학, 유체역학이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의 범위를 짐작할 수 있다. 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루겠다는 얘기다. 물론 이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결국은 이 역사가 유체 소멸의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말이다(대표적인 것이 양자역학이다).

 


 

 

이야기는 근대 과학혁명 시기부터 시작된다. 레볼루션, revolution이 뜻풀이에서 시작하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Revolutoin은 흔히 혁명이라고 해석, 번역되지만, 코페르니쿠스가 이 말을 썼을 때는 회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단어가 사회 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의미하는 혁명을 뜻하게 되었는데, 저자는 그 계기가 코페르니쿠스의 체제가 그만큼 영향력이 컸다는 식으로 보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에서 시작한 혁명과 낭만의 과학사는 프랑스 혁명기와 산업 혁명기의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과 관련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들로 이어지고,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현대 문명의 토대를 이룬 발견과 발명의 시대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한 과학 교양서에서 그친다고 할 수 없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과학자, 엔지니어, 혁명가들, 음악가, 미술가, 기업가 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서로 얽히고 또 얽히기 때문이다. 과학자끼리의 협력과 배신은 물론이고, 누구누구의 아들, 딸들이 그 다음 세대에 다른 관계로 엮이고, 전혀 다른 분야의 인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다. 이 그물 같은 얽힘은 사람 사이의 관계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사회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하고, 사회에 영향을 주면서 과학은 발달하고, 또 굴절되고, 또 그러다 다시 궤도를 찾기도 한다.

 

만약 유체 역학의 발달 과정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현재 분량의 1/3이나 됐을까 싶다. 저자는 과학을 보다 넓게 보려 했고, 과학만이 아니라 과학과 과학자들이 사회, 혹은 다른 분야의 인물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현미경을 대고 바라보려 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저 이야기로, 저 이야기를 하다 다시 이 이야기로 돌아온다. 어쩌면 복잡해보이지만, 그런 복잡함이 과학이고 역사인 듯하다. 그래서 결국에는 만타 레이가 딱 이 책의 제목으로 딱! 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일단 놀라게 되는 것은 저자가 과학의 흐름을 정말 일관되게 파악하면서 다양한 과학 분야(저자는 기계공학 전공이다)에도 정통하다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놀라게 되는 것은 문학, 미술, 음악 등에 정말 종횡무진의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인상 깊은 것 하나만 고르자면, 1차 세계대전의 방아쇠를 당기게 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가 저격되어 죽을 때 그 운전사가 바로 포르쉐(그렇다. 같은 이름의 자동차가 있다. 바로 그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를 세운 사람이다)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걸 도대체 어디서 알게 된 걸까 싶다. 그런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정말 많이 소개하고 있는데, 그런 관계 때문에 이 거대한 과학의 흐름이 혁명과 낭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런 관계, 즉 에피소드와 같은 얘기들을 정말 많이 언급하고 있는데, 좀 아니다 싶은 것도 있다. 다른 부분은 잘 모르겠고 한 가지만 눈에 띠는 부분을 들자면, 다윈의 진화론에 관련된 얘기다. 저자는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원리를 발견하고 이를 아내가 된 외사촌 엠마에게 먼저 이야기했고, 엠마는 그것을 금방 이해했다고 했는데, 내가 알기로는 정확하지 않은 얘기다. 내가 읽어본 여러 저자들의 그 두터운 다윈 평전들에서 그런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런 걸로 미루어 보면 좀 부정확한 에피소드들, 혹은 좀 과장된 에피소드들도 끼어들어가지 않았나 싶은 것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많은 에피소드들이 흥미롭고(에피소드는 늘 그런 것이긴 하다), 그래서 이 책을 더욱 부드럽게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없을 수는 없으나 과학()에 대해서, 그리고 과학, 혹은 과학자가 다른 분야, 다른 분야의 인물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이렇게 풍부하게 보여주는 책은 정말 보지 못했다. 놀라운 책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무척 사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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