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에를리히와 마법 탄환
에를리히는 병원균이나 암세포를 파괴하기 위하여 화학 물질을 사용한 최초의 과학자이기도 하다. 바로 ‘화학요법(chemotherapy)’라고 불리는 치료법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후에는 급격히 연구력이 떨어지는 요새의 과학자들과는 달리(사실 노벨상의 업적을 낸 후 너무 오래 있다 노벨상을 받기는 한다) 에를리히는 노벨상 수상 바로 다음 해에 최초의 자우버쿠겔(Zauberkugel), 즉 ‘마법 탄환(magic bullet)’을 만들어냈다(모든 질병을 한 방에 없애준다는 의미의 ‘마법 탄환’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도 에를리히였다).
에를리히가 마법 탄환, 혹은 화학요법의 대상으로 삼은 질병은 ‘매독’이었다. 매독은 트레포네마 팔리듐(Treponemma pallidum)이라는 세균에 의해 생기는 질병으로 성적 접촉에 의해 전염된다. 논란은 있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바에 따르면, 15세기 무렵 유럽에 전파되었고, 이후로 헨리 8세에서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괴롭히며 악명을 떨쳤다. 매독에 걸리면 아픈 것뿐만 아니라 몰골이 흉해져 더욱 괴로운 질병이었으며, 미치게 하다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살바르산이 나오기 전까지 매독에 대한 유일한 치료제는 독성을 지닌 수은이었는데, 수은은 매독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단지 병의 진행을 늦출 뿐이었고 부작용도 심했다. 그래서 “베누스(비너스)와의 하룻밤, 수은과의 한평생”이라는 말도 나왔다. 에를리히는 비소(As) 성분에 기초해서 화학 물질을 합성해냈는데, 바로 ‘살바르산(salvarsan)’이라고 하는 물질이었다. 처음에 이 물질에는 ‘606호’라는 번호가 붙여져 있었는데, 에를리히가 606번째 만들어 시험한 물질이라는 의미다. 최초의 실질적인 매독 치료제, 아니 감염에 대한 화학요법이었다.
그는 자신의 수용체 이론에 근거하여 특정 염료가 세포의 특정 성분에 결합해서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다면, 세균의 특정 성분에만 결합하는 물질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물질이 결합한 부분을 파괴하거나 작용을 막는다면 세균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라 주장하면서 염료로부터 각종 화학 물질을 만들어 시험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지금도 세포 염색약으로 널리 쓰이는 메틸렌블루를 이용해서 효과를 관찰했고,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기도 했다. 메틸렌블루에서 희망을 본 에를리히는 다른 염료를 찾아나섰다. 늘 염료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에 대해 토머스 헤이거는 《감염의 전장에서》에서 “파랑, 노랑, 빨강, 초록 손가락의 남자”라고 하고 있다.
살바르산은 에를리히에게 노벨상 수상보다도 더 큰 명성을 안겨주었다. 매독이라는 질병으로부터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으니 그럴 만도 했고, 이제 다른 감염질환도 정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한 업적이었다. 그가 죽은 후이긴 하지만 1940년에는 그의 이야기를 다룬 <에를리히 박사와 마법 탄환>이라는 장편 영화가 만들어져 개봉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군데서 에를리히에 대한 비난도 있었다. 매독이라는 ‘부도덕한’ 질병으로부터 사람을 살려내는 게 마땅한가라는 비난도 있었고, 비소 자체가 원래 독약이기 때문에 그 독성 성분으로 생겨난 부작용을 에를리히에게 전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에를리히는 살바르산의 부작용으로 고생하고, 심지어 죽는 사람이 생기는 기록들을 모두 보관할 정도로 괴로워했다. 그는 결국 술독에 빠졌고 61세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하고 만다.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묘지에 묻혔지만, 훗날 나치가 훼손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물질을 마법 탄환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마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조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사용법도 복잡했다. 그리고 다른 감염에는 듣지 않았다.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제가 등장하면서 곧 무대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에를리히는 종종 성공을 위해서는 4개의 ‘G(게)’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4G’란 모두 독일어로 G로 시작하는 단어인 ‘인내(Geduld)’, ‘기술(Geschick)’, ‘행운(Gluck)’, ‘돈(Geld)’를 의미한다. 그에게 살바르산 개발 성공의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7년의 불운, 잠깐의 행운”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행운의 전제는 인내와 기술이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물론 돈도 필요하다(폴 드 크루이프는 《미생물 사냥꾼》에서 에를리히가 살바르산 개발 당시 “돈을 물 쓰듯이” 했다고 쓰고 있다. 그 돈은 독일의 제약회사 회히스트가 댔다).
에를리히는 꿈을 꾼 사람이었다. 질병을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약이 있다는 것을 믿었으며, 그것을 찾기 위해 강박적으로 일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얼토당토않은 몽상가는 아니었다. 탄탄한 토대를 지닌 아이디어가 있었으며, 정확히 관찰하고, 측정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의 기법은 혁신적이었다.
파울 에를리히가 들어간 유로화 사용 이전 독일 지폐. 중간의 분자 구조는 살바르산의 모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