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된 공간에서 위기를 맞고, 그것을 극복하는 상황을 설정하는 것은 영화의 기본적인 문법이다. 금방 떠오르는 우리나라 영화로는 <부산행> 같은 영화가 있다. 외부로부터의 도움은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위기를 많은 내부의 사람들은 분열되며 인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결국은 일체감을 가지게 되며, 뜻밖의 인물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심으로 떠오른다. <비상선언>은 딱 그런 영화의 기본적인 문법에 충실하다. 하지만 기본적인 문법을 따른다는 것은 성공의 요인도, 실패의 요인도 아니다. 얼마나 그 상황을 영화답게, 아니 현실적으로 보이도록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영화 <비상선언>이 그런 걸 얼마나 잘 해냈느냐는 관객들이 판단할 것이다.
인상 깊었던 상황, 혹은 장면 몇만 추린다.
우선 배우 임시완이다. 선한 얼굴의 임시완이다. 그런 임시완이 공항 창구 앞에서 가장 많이 타는 비행기가 어떤 것이냐 묻는 것 자체가 소름이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즉 왜 하필이면 비행기를 택했는지에 대한 개연성이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다음은 바이러스에 대해. 지금 현재론 이 영화에서처럼 잠복기가 짧고, 바로 증상이 나오는 바이러스는 없다. 그래서 잠복기가 짧은 바이러스를 발견했고, 연구를 통해 더 짧게 변형시켰다고 나온다. 사실 생물 테러로 더 적합한 것은 잠복기가 적당히 긴 것이 더 좋다. 그래야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보유한 채로 돌아다닐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뜨릴 수 있다. 물론 폐쇄된 장소에 있는 특정한 사람들을 몰살시키기 위해서는 영화에서처럼 잠복기가 짧을수록 좋겠지만.
그래서 비행기의 착륙을 반대하는 이들을 과학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 거란 생각했다. 짧은 잠복기, 빠른 증상은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는 데 유리한 조건이지 나쁜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의 감정이란 과학만으로 설득될 지는 모르지만.
김남길 배우와 김소진 배우가 눈에 띠었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얼마 전에 TV에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란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배우들이라서 그렇다. 특히 김소진 배우는 목소리가 인상 깊은데, 그게 잘 어울리는 배역이 있고, 그렇지 않은 배역이 있다. 이 영화의 스튜어디스와 같이, 더욱이 사무장같이 차분한 대응이 드러나야 하는 역할에는 무척이나 어울린다.
끝으로 아예 처음부터 그걸 의도하지 않은 신파는 영화를 망친다.
한 가지 영화와는 별 상관없는 얘기(이 얘기를 해도 되나 무척 망설여지지지만).
영화에서 국토교통부 장관 역의 전도연은 보건복지부 장관 역할까지 한다. 영화에도 보건복지부 장관은 나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