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기로는 곽재식 박사가 세균학과는 관계가 없는데 세균에 대해서 얼마나 어떻게 쓰고 있나 궁금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풍부하고 깊다. 어떤 분야의 지식을 습득해서, 그것을 자기화하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다른 분야의 지식과 내공이 잘 몰랐던 분야에 접근하는 데도 도움을 주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곽재식 박사는 이 책을 통해서 세균에 대해서 거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지만, 세균에 관한 중요한 것, 필요한 것, 재미 있는 것은 죄다 얘기하고 있는 느낌이다.
<1부 과거관>에서는 세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세균, 내지는 생명의 탄생에 대해서, 세균이 만들어간 지구의 환경에 대해서 다루고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남세균이다. 남세균은 광합성을 하는 세균으로 지구에서 다른 생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냈고, 또 결정적으로 대기의 산소를 만들어냈다), 내부 공생을 통해 진핵생물, 즉 우리와 같은 생명체를 만들어 간 역사를 이야기한다.
<2부 현재관>에서는 세균의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것은 주로 최근 과학자들이 알아낸 사실들이다. 세균이 분열을 통해서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 견해와 그래도 분열된 세포에 더 늙은 세포와 그렇지 않은 쌩쌩한 세포가 있다는 최신의 견해는 나도 언뜻 들어봤던 거라 새롭고, 내생포자를 통해 몇 백 년, 아니 몇 천 년, 몇 억 년을 견디는 세균의 능력, 식중독을 일으키거나 혹은 김치를 맛있게 하는 세균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김치를 담글 때 왜 꾹꾹 눌러 담아야 하는지 아는가?). 질소 고정을 통해 땅을 비옥하고 하고, 동물과 식물을 먹여 살리는 것도 세균이 있어서라는 걸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3부 미래관>은 현재 과학자들이 세균을 두고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플라스미드에 관한 내용 자체는 오히려 <2부 현재관>에 다루어야 하는 내용 같지만, 이를 이용해서 세균이 새로운 형질을 갖도록 하는 연구는 세균을 활용하는 연구임으로 여기에 둔 것 같다. 항생제, 바이러스, 특히 세균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작용으로 가지고 있던 크리스퍼(CRISPR) 기술, 하수처리장에서의 세균 활용 등은 세균과의 대결, 혹은 세균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예들이다.
<4부 우주관>은 SF 소설가로서의 곽재식 박사의 진가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가끔 이런 내용을 접할 때가 없지는 않지만, 이렇게 책의 거의 1/4이나 차지하면서 우주미생물학에 대해서 쓰고 있는 책은 없었다. 지구 생명의 기원과 관련한 외계 생명체에 대해서(외계 세균에 의한 지구의 오염 내지는 지구 세균에 의한 우주의 오염도 다룬다), 우주를 탐사하는 데 있어서 세균을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세균을 이용한 생물 테러에 대한 우려도 함께 쓰고 있다. 저자의 상상력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 우리나라의 문헌,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양 과학서적에서 지식의 발전에 공헌하는 우리나라 과학자의 연구가 소개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이 책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과학자, 특히 세균학자들도 무척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