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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의 지리학

[도서] 전염병의 지리학

박선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지리학자 박선미는 역사상의, 그리고 오늘날의 여러 전염병을 돌아보며 그 전염병들이 지리와 맺는 방식을 분석하고 있다. 전염병 자체가 지리와 관계를 맺는다고 했을 때, 보통은 특정한 질병이 어떤 지역에서는 더 많이 발병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식이지만, 여기서는 그보다는 사회적인 관계 맺기 방식이 여기서의 지리학이다.

 

다루고 있는 전염병의 종류는 많지 않지만, 인류 역사에 긴 상흔을 남긴 것들이다. 인도 갠지스 강의 풍토병이었다가 대항해시대 제국주의 군대와 상선을 따라 전 세계로 퍼진 콜레라와 전근대적 질병이지만 아일랜드 대기근과 함께 미대륙에서 민족에 대한 혐오의 대명사가 된 장티푸스, 20세기 초반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시기에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스페인 독감, 과거에는 전 지구적 질병이었지만 점차 열대 풍토병으로 변해간, 즉 다른 질병과는 다른 행로를 보인 말라리아, 아름다운 질병에서 가난뱅이 질병으로 변신한 결핵, 중부 아프리카의 삼림 지대를 벗어나지 못하다 그곳을 빠져나오며 전 지구인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에볼라, 20세기 흑사병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거의 만성병이 된, 하지만 지금도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에이즈, 그리고 코로나19.

 

이 질병들이 지리와 맺고 있는 방식은 질병마다 조금씩 다르다. 콜레라는 근대 도시의 형성과 관련을 맺음으로서 지리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었고, 장티푸스는 인종과 민족을 가리지 않고 감염되었지만, 유독 미대륙에서는 아일랜드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질병으로 작용했다. 장티푸스는 특히 아일랜드 대기근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아일랜드가 영국과 맺은 지리적 관계와 밀접하다. 스페인독감은 다른 질병과는 달리 인종적, 민족적 혐오가 크지 않았는데, 그런 현상 자체가 인종적, 민족적 편견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스페인독감이 시작된 지역이 바로 미국이었고, 이 질병이 전 세계로 퍼진 데에는 제국주의 전쟁인 제1차 세계대전이 주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말라리아에 대해서는 이 질병에 대한 근절을 시도했다 실패했고, 근절을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과거의 실패 요인을 되짚으며, 현재의 근절 시도 역시 한계점을 갖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빌 게이츠 등의 지원이 오히려 근절 시도에 대해 자본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면서 오히려 방해받고 있다는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이에 관해서 논란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에볼라에 관해서는 과거에는 서구가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과 생산에 별 노력을 하지 않다 미국 및 유럽에 상륙한 이후에야 신속하게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고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에이즈는 민족이나 인종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보다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문제다. 이것을 지리학과 연관 지을 수는 없지만, 여기서 나아가 선진국의 에이즈 환자들이 여러 치료법으로 만성병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지역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이를 통해 치료받을 권리를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으로 지리학적 분석을 요하는 여러 질병들의 문제점은 현재의 코로나19에 모두 응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인에 대한 혐오에서 보이는 오리엔탈리즘은 인종적, 민족적 차별이, 이 질병이 도시를 비롯한 인구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퍼지는 질병의 현대적 양상이, 모든 사람이 똑같이 치료를 받고, 백신을 맞지 못하는 데서 보이는 치료받을 권리의 불균등성이, 초기에 여러 선진국이 우왕좌왕거리며 많은 감염자와 사상자를 내고,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왔던 것에서 신자유주의에 의한 자본 중심, 개인 중심의 보건 의료 체제의 문제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각 질병에서 지리적 분포나 사회적 편견, 치료의 문제 등에 관한 분석은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러 질병을 한 데 모아서 분석하고 설명함으로써 전체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시도는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다. 또한 의미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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