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고, 결국 2년 후 단종을 폐한 후 왕위에 오른 세조의 주변에서는 늘 피 냄새가 났다. 단지 계유년의 참극만이 아니었다. 왕위에 오른 후, 그 정통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세력이 있었고, 함께 목숨을 걸고 자신을 왕위로 올린 공신 세력들에게 둘러싸여 운신의 폭이 좁았다. 이를 타개하는 데도 역시 피냄새를 풍길 수 밖에 없었다. 반란은 물론 반란의 조짐마저 무자비하게 꺾었고, 그 대가는 참수, 나아가 효열이었다. 임금과 신하 사이와 목숨을 건 동지 사이를 오기는 공신들에게도 “임금은 임금, 신하는 신하”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자신에게 무례를 범한 이들에게 과하게 굴었다. 역시 죽였다. 그러면서도 훈척, 즉 공신들은 척결하지 못하고 그 세력을 그대로 다음 대, 예종에게 물려줄 수 밖에 없었다.
세조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한 것이라 믿었으리라. 할아버지 태종이 그러했듯, 자신은 어린 임금(단종)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정사를 좌지우지하는 세력(김종서, 안평대군 등)을 처단했다고 발표했고, 또 스스로 그리 생각했으리라. 그리고 자부했을 것이다. 임금의 자리에 오른 후, 조선이라는 나라를 체계화했고, 군사력을 증강했고, 법을 세우기 위해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자신이 임금이 된 것은 그랬어야 할 이치라고 여겼을 법하다.
김순남은 세조라는 인물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거의 시간 순으로 따라가면서 그의 인물됨보다는 그 시기에 있었던 일들을 중심을 보여주고 있다.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 세종을 돕던 시절, 세종이 죽고, 형 문종마저 죽은 후 단종이 즉위한 이후 권력을 찬탈하는 과정, 즉위 이후 권력을 공고히 해가면서도 공신들을 물리치지 못하고 그들과 한몸이 되어 편 가르는 국정을 운영해 간 과정, 그 과정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변모시켜간 과정, 재위 후반부에 새로운 세력을 키워가며 권력 재편을 노렸던 과정, 하지만 결국은 실패한 결과 등을 보여준다.
그의 시각은 주로는 <실록>에 의존하고 있는데, <실록>이 어쩔 수 없이 살아남은 자, 승리한 자들의 기록임에는 분명하지만, 없는 일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최소한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다소는 세조의 시각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또한 세조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종친이었던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그를 지지했다고 하더라도, 김종서가 국정을 농단하고, 안평대군이 이미 딴 마음을 먹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세조의 권력 찬탈은 김순남이 이야기하는 대로, 국가 시스템을 사적인 힘으로 무너뜨린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며, 세조는 그 원죄를 죽을 때까지 업고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후의 그가 임금으로서 세운 업적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폭력적인 방식으로 임금이 되었지만, 그가 임금이 됨으로써 나라가 더 나아졌다고 해서 그의 행위를 눈감고, 심지어 명군이라고 칭찬해야 할까? 그게 조선이라는 나라, 그 시대에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고개를 끄덕여야 할까? 난, 적어도 아니라고 본다.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 권력은 그 정당성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세조 대 내내 흩뿌려졌던 피는 그 대가라고 본다. 세조를 명군이 아닌가 고민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