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전체검색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도서]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박건호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역사 교사는 역사 컬렉터다. 박봉을 쪼개 역사의 자료를 수집한다. 그가 수집한 역사의 자료는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다. 물론 지석영의 兒學編과 같은 것이나 손기정 선생의 사인과 같은 자료는 개인적인 것이라 할 수 없겠지만, 이 책에 소개한 나머지 자료들은 개인의 일기장, 어떤 것을 기념한 단체 사진, 개인의 사진, 편지 등등이다. 이 자료들을 남긴 이들은 일기를 쓰고, 편지를 쓰고, 사진을 찍으면서 그것들이 역사를 증언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일상은 소중한 자료로 남아 수집가(컬렉터)의 손으로 들어가 소중한 역사 자료가 되고 있다.

 

 

여기의 자료들은 말하자면 주로 역사의 단면(斷面)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시점을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겼다. 그러나 성실한 수집가이자 역사 교사는 이것을 역사의 서사로 변환하고 있다. 독립문 건립 영수증은 독립(獨立)’의 의미가 시대마다 달랐음을 증언하는 자료로 확장되고 있으며, 1950년대의 결혼식장의 사진들은 당시의 국가주의를 증언하고 있다.

 

수집가가 제시하고 있는 자료들 중 많은 부분은 우리의 역사가 개인에게 얼마나 비극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것들이 많다. 손기정(‘손긔졍이라고 썼다)이라 쓰고 KOREAN이라고 분명하게 적은 손기정 선생의 사인, 10년 후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서울역에서 찍은 함께 찍은 사진, 한국전쟁 당시 한 장교의 전시 수첩, 경북 예천 출신으로 북한군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서 보낸 편지 등이 그런 것들이다. 아픈 역사가 그저 거시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를 수치로 들먹이는 것보다 개인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밖에 지역 공무원의 반탁운동 일환으로 혈서를 보탠 사직서, 이승만 대통령 생일을 비꼰 당시 경기중학교 학생의 일기, 박정희의 유신과 관련하여 신라의 김유신을 떠받들게 된 상황을 증언하는 사진 등도 우리의 역사를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거창하다. 세계사도 거창하며, 한 국가의 역사를 기록한 국사도 거창할 수밖에 없다. 그런 거창한 역사에는 개인의 삶은 거의 기록되지 않는다. 그래서 개인의 삶, 아주 작은 계기에 집중한 미시사(微視史)라고 하는 것이 등장한 배경도 그런 것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미시사의 경우에 그 좁은 세계에 매몰되어 커다란 역사적 흐름을 잊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반면 박건호의 역사 수집과 거기서 파생한 역사에 대한 서사는 작은 자료에서 먼지를 떨어내고 커다란 역사의 흐름을 알아내고, 커다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이 느꼈던 소소하면서도 소중한 감정들을 포착해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0

댓글쓰기
첫 댓글을 작성해주세요.

PYBLOGWEB1